◇팻/돈 쿨릭, 앤 메넬리 엮음·김명희 옮김/376쪽·1만7000원·소동
유숙열 문화미래 이프 공동대표(오른쪽)
이 책은 ‘팻(Fat)’을 ‘살’이나 ‘지방’으로 한정하지 않고 음식 언어 미학 심지어 관능의 모체로 접근한다. 인류학자들이 비만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미국 스웨덴 이탈리아 같은 이른바 서구권 선진국 국민은 물론이고 아랍권 중남미권 아프리카권 사람들 그리고 문명의 영향을 받지 않은 원주민 등을 대상으로 현지조사를 해 그 결과를 엮었다.
13명의 인류학자는 전 세계에 걸친 지방의 다양한 의미와 의도를 읽기 쉽게 풀어놓았다. 니제르 아랍인들에게 뚱뚱한 여성은 아름다움의 최고봉이다. 서아프리카에서는 전통적으로 가장 풍만한 여성을 뽑는 미인대회가 열렸다. 나이지리아는 수년간 미스월드대회의 성적이 저조하자 2001년에 키가 크고 날씬한 여성을 내보냈고, 이 여성이 대회에서 우승했지만 자국에서는 미인으로 환대받지 못했다.
아름다운 몸에 대한 숭배가 브라질만큼 발달된 곳은 지구상에 없다. 브라질은 1인당 성형외과 의사 수가 세계 어느 곳보다 많다. 2001년엔 무려 35만 건의 성형수술이 행해졌다. 2001년 미스유니버스대회에 브라질 대표로 참가한 줄리아나 보르헤스는 유방 확대, 광대뼈 세우기, 턱 실리콘 삽입, 브이라인 성형, 귀 성형, 허리와 등에 지방흡입 수술을 했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브라질 중산층 여성은 월급보다 많은 돈을 들여 지방흡입 약을 구입한다. 그들에게 지방은 빈곤과 유색 인종의 상징이며, 지방을 뺀다는 것은 백인 상류층에 가까워진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지방의 문화가 몸에 관한 것에만 한정된 건 아니다. 스팸과 올리브 오일에 관한 이야기도 재미있다. 스팸 제조사에 따르면 미국 최고의 스팸 소비지는 하와이다. 미국의 스팸은 군인과 노동자에게 미국 세력의 세계 팽창을 용이하게 해줬던 ‘산업식품’이었다. 미국 본토의 식민주의자가 들여온 스팸은 하와이 대농장에서 일하던 원주민 노동자들의 빈 배도 채워줬고 이는 오늘날 하와이인들의 식습관도 지배하고 있다.
중세 프랑스 소설가 라블레의 책 속 삽화. 주요 인물인 뚱보 가르강튀아는 대식을 즐겼다. 소동 제공
뚱보 포르노에 관한 내용도 관심을 끈다. 특히 뚱뚱한 포르노 여배우가 성행위를 하지 않고 핥고, 후루룩 마시고, 오도독 씹으며 음식을 먹는다는 것이 인상 깊다. 여자가 남근 없이도 마음껏 먹고 즐기며 쾌락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포르노는 그 존재만으로도 뚱뚱한 여체를 보고 싶어 하지 않는 우리 사회에 대한 도전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인류학자가 아닌 비만인권운동가 앨리슨 미첼이 쓴 마지막 장이다. 키 160cm에 몸무게가 75kg에서 100kg 사이를 왔다 갔다 하던 그는 비만인권운동단체 ‘PPPO(매우 뚱뚱하고 짜증나는·Pretty Porky and Pissed Off)’를 설립하고 1996년 첫 시위를 함으로써 뚱보 해방운동을 시작했다. 이 운동은 바른 신체상과 섭식장애를 교육하고 훈련시키는 것부터 건강과 미의 기준을 재교육하는 것까지 아우른다. 또 신체를 이유로 차별하는 법과 정책을 바꾸기 위한 각종 정치 및 교섭 활동도 하고 있다.
결국 이 책의 문제의식은 자신의 시각으로 자신의 몸을 돌아보라는 데 있다. 다이어트 문화를 무작정 따라가지 말고 지방에 관해 지성적으로 사고하고, 지방에 깃든 우리 문화의 차별 등을 제대로 인식하라는 것이다.
유숙열 문화미래 이프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