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중국의 정식 수교가 이뤄진 때가 1992년이니 그 전의 일이다. 1990년 대 초반만 해도 중국을 자주 방문할 수 있었던 그룹은 스포츠 관련 단체였다.
이 때 국제대회에 출전하는 배구대표팀을 따라 중국에 간 일이 있다. 하루는 숙소에서 TV를 보고 있는데, 거의 사색이 된 사람이 나와 울먹이며 뭔가를 말하는 장면이 나와 궁금증이 든 필자는 중국 배구협회에서 일하는 조선족 관계자에게 어떤 상황인지 물어봤다.
그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TV에 나온 사람은 중죄를 지은 사형수로서 사형 집행을 앞두고 자신의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는 것이었는데 "나처럼 죄를 절대 짓지 말고,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등의 참회와 당부의 내용이었다.
지난해 2월, 중국의 TV에서는 수의를 입은 죄인들이 10여명 나와 "팬과 부모님께 죄송하다. 철저히 반성하고 있다"며 참회의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방영된 적이 있다.
이들은 뇌물 수수와 축구 도박에 관여했다는 혐의로 구속된 19명의 축구 관계자들이었다. 중국축구협회 부주석 난용과 심판위원회 주임 장지엔치앙 등 중국축구협회 수뇌부를 비롯해 감독, 선수, 심판 등이 포함됐다.
이들은 TV 카메라 앞에서 "축구도박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이며 철저하게 반성하고 있다"며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승부조작 사건이 터진 뒤 열린 사상 초유의 K리그 16개 전 구단 소속 선수, 지도자, 임직원 워크숍 광경. 스포츠동아DB
중국은 축구 인프라가 잘 갖춰진 나라다. 1994년 4월17일 출범한 중국 프로축구 리그는 1부(갑A) 리그에 16개 팀, 2부(갑B) 리그 14개 팀이 활동하고 있다.
여기에 축구 선수들은 일반인 연봉에 비해 수십 배에서 수백 배의 돈을 벌기 때문에 실력 있는 스포츠 유망주들이 너도나도 프로축구에 도전한다.
2002 한일월드컵 중국-터키의 경기 장면. 중국은 첫 출전한 한일월드컵에서 3패로 조별 예선에서 탈락했다.
또한 한국축구에게는 역대 대표팀간 전적에서 1승11무16패로 절대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원인이 2009년 밝혀졌다. 바로 축구 도박 때문이었다.
중국축구의 비리 구조는 축구협회 관료에서부터 클럽의 구단주, 선수에서 심판에 이르기까지 만연해 있었다. 한때 중국의 지하 축구 도박 세계의 시장 규모만 따져도 170조 원을 넘었다는 보고서도 나왔다.
축구계의 비리 구조가 너무 광범위하게 퍼져 있어 자체 정화가 힘든 상황이 되자 결국 중국 정부가 직접 나섰다.
2009년 말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시진핑 부주석이 나서 중국축구의 문제점을 거론했고, 공안 당국이 즉각 활동을 시작했다.
2010년 2월 중국축구협회 부주석 난용과 심판위원회 주임 장치엔치앙 등 협회 수뇌부를 비롯해 감독, 선수, 심판 등 100여명이 뇌물수수와 축구 도박에 관여했다는 혐의로 조사를 받고 이중 19명이 구속됐다.
중국축구협회는 승부 조작, 도박 등 범죄 행위에 엄격하게 대처하겠다는 내용을 발표했고, 국가체육총국 국장 류펑은 중국축구개혁 6대 조치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렇게 축구 정화 캠페인을 벌인 덕택이었을까. 2010년 2월10일 열린 동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에서 중국축구대표팀은 한국축구대표팀을 3-0으로 꺾고, 1978년 이후 32년 만에 한국을 상대로 첫 승을 거두는 감격을 누렸다.
2010년 2월 동아시아축구대회에서 중국에 0-3으로 패한 뒤 침울한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나오고 있는 한국축구대표팀 선수들. 연합뉴스
최근 한국 축구계가 승부조작 사건으로 뒤흔들리고 있다. 검찰의 수사로 드러나는 사건의 내용을 보면 중국의 과거 축구 도박 사례들에 못지않다.
한국축구가 파국을 맞지 않기 위해서는 전방위적으로 정화 캠페인을 벌인 중국축구를 본받아야 할 시점이다.
"사형수처럼 수의를 입은 채 TV 카메라 앞에서 전 국민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를 한 중국 축구인들처럼…."
권순일 기자 stt7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