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논설위원
군대를 안 갔다 온 탓인지 요즘 제일 헷갈리는 게 국방개혁안이다. 작년 3월 26일 천안함 폭침사태가 터졌을 때만 해도 당장 군이 뼈를 깎겠다고 나서고, 정치권도 뒷받침할 줄 알았다. 그런데도 어영부영 보내다 11월 23일 연평도가 북에 맥없이 포격을 당했다. 사흘 뒤 새로 내정된 국방부 장관이 눈빛도 레이저 광선 같은 김관진이었다.
위장전입과 세금 탈루가 보통인 이 내각에서 장성 출신이 그런 기록 하나 없이 1995년식 중형차 크레도스를 타고 다니면 청렴의 화신으로 봐야 한다. 인사청문회 때마다 국민은 속이 뒤집어졌는데, 그는 “(북한군의 연평도 포격 도발에) 우리 군의 대응이 허술했다는 데 100% 동의한다” “북이 추가 도발한다면 자위권 차원에서 항공기를 이용해 폭격할 것이다”라고 분명히 말해 속을 풀어줬다. “작전 시행 시 현장에서 ‘쏠까요, 말까요’ 묻지 말고 선(先)조치, 후(後)보고하라”고 지시한 대목에선 모처럼 무인(武人)다운 무인, 남자다운 남자를 보는 것 같았다.
22년 전과 똑같은 “국방개혁 반대”
“현재의 합참의장 제도로는 육해공군의 통합전력 발휘가 미흡하다. 합동성 강화를 위한 개혁이 꼭 필요하다.”(국방장관)
“육군 중심이어서 해·공군의 전문성이 침해된다.”(해·공군과 예비역)
22년 전 야당과 해·공군, 예비역의 격렬한 반대에 군 출신 대통령은 물러섰다. 당시 8·18기획단 법규과장이던 김관진 대령은 참담한 심정으로 후속작업의 명을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 군령(軍令)은 합참의장에게, 군정(軍政)은 각 군 참모총장에게 억지로 갈라주는 개악(改惡)이었다고 그는 기억했다. 천안함 사태 때 침몰 원인이 피격이면 군령 계통(합참)으로, 좌초면 군정 계통(해군본부)으로 처리해야 하는 바람에 한동안 혼선과 혼란이 벌어진 것도 이런 물개혁과 무관하지 않다.
문제는 이대로 가면 2015년 12월 1일 전시작전통제권이 한미연합사에서 우리 쪽으로 넘어온 뒤에도 비슷한 혼란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만에 하나, 육해공군 통합군으로 편성된 북한군이 서해5도를 집중포격하면서 특수부대를 침투시킬 경우 합참의장은 작전권을 갖고서도 당장 병력과 군수물자를 동원해 응전하기 어렵다. 한 예비역 육군 장성은 “현재의 방어개념으론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미국이 개입하기까지 ‘인간방패’인 육군이 초기 일주일 새 10만∼20만 명은 죽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런 파국을 막으려는 게 새 개혁안이라며 김 장관은 “선진국에서는 진작 이렇게 가고 있다”고 했다.
누가 국민과 국군의 편인가
마흔 살 때 좌절됐던 국방개혁의 소신을 20여 년 만에 장관이 돼 되살릴 기회를 만났을 때, 그러나 그때와 똑같은 반대에 부닥쳤을 때 심정이 어떨지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제 싱가포르 아시아안보회의를 마치고 돌아온 장관에게 “국방개혁안이 그리 중요한 것이면 직(職)을 걸 수도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옳은 일이므로 이미 혼(魂)을 걸었다”고 말했다.
그러다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정권의 향방이 바뀌면 정치적 군사적 상황까지 변할지 모른다. 천안함 연평도 사태를 겪고도 우리 국군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제2의 6·25를 맞을 수도 있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