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극 ‘백년, 바람의 동료들’음악★★★★ 연출★★★★ 대본★★★☆ 연기★★★☆
재일교포의 애환을 극화한 음악극 ‘백년, 바람의 동료들’의 피날레. 오사카 코리아타운의 실존 술집을 소재로 지난해 조박 씨(가운데 기타 든 사람)가 발표한 노래 ‘백년절’을 무대에 담아냈다. 두산아트센터 제공
재일교포 가수 조박 씨가 지난해 한일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발표한 ‘백년절’이라는 노래엔 이를 무색하게 하는 대목이 있다. ‘백 년 지나면 강산이 변하네/대지는 갈라지고 끊겨 버리고/대대손손 삼대가 살아왔건만/조국을 갈망하는 허무함이여/백 년 지나면 강산이 변하네/사람의 마음도 변하지만/백 년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은/굽히지 않는 불복종.’
이 노래는 100년이란 세월 동안 애달픈 타향살이를 하면서도 일본에 귀화하지 않는 70만 재일교포의 독특한 정체성에 주목한다. 산천이 바뀌고도 남을 세월에도 변치 않는 그 비타협적 정신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일까.
‘백 년, 바람의 동료들’은 그 노래의 사연을 음악극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무대는 오사카의 코리아타운으로 유명한 이카이노 거리의 술집 ‘바람 따라 사람 따라’. 개업 20주년을 맞은 이곳에 대대손손 일본인도 아니고 한국인도 아니고 (북)조선인도 아닌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들은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추면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화두를 붙잡고 살아왔던 인생살이를 돌아가며 들려준다.
제주 4·3사건으로 너무도 많은 친인척을 잃어 집집마다 1년에 10여 차례나 제사를 지내는 피눈물 나는 사연, 북송선을 타고 간 가족과의 생이별로 시커멓게 가슴 탄 사연, 한국 민주화에 동참한다는 자부심이 ‘한국말도 못하는 반쪽발이’라는 말에 무참히 짓밟힌 사연….
타향살이의 설움을 달랠 소속감을 찾으려 좌충우돌하던 그들이 내린 결론은 “내셔널리즘도 싫어, 코즈모폴리터니즘도 싫어. 민족적 편견 섞인 조센징도 싫지만 버터냄새 나는 ‘자이니치 코리안’도 싫어. 그저 활기 넘치는 재일 간사이 사람으로 살래”이다.
그들은 흑백논리의 이분법을 타파하는 제3의 존재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규정한다. 그 순간 일본에 대한 불복종과 남북 모두에 대한 반항심이라는 부정의 에너지가 ‘민족 국적 피부색 인종 다 상관없는 일본 빈민 공화국, 이카이노 만세’라는 긍정의 에너지로 폭발한다. ‘눈처럼 쌓이고 술처럼 빚어지는’ 한국적 한(恨)이 국적을 초월한 신바람으로 전환하는 순간이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i:두산아트센터의 올해 기획공연 ‘경계인’ 시리즈 두 번째 작품. 7월 2일까지 서울 종로구 연지동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 111. 1만5000∼3만 원. 02-708-5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