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권희 논설위원
CNC란 컴퓨터수치제어라는 뜻이다. 기계부품을 가공하는 공작기계에 CNC를 연결하면 컴퓨터로 기계를 조종할 수 있다. 프로그래밍 해놓은 대로 기계가 알아서 정밀작업을 척척 해낸다. CNC 활용으로 불량이 줄어들고 생산성이 높아지는 건 물론이다.
북은 CNC의 놀라운 성능이 권력 후계자 김정은의 지도 덕분이라며 첨단기술과 젊은 지도자를 연결짓는다. 북은 CNC 보급으로 생산량이 서너 배 늘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일부 탈북자는 “CNC가 제대로 가동이 안 돼 불량이 늘었다”거나 “CNC로 하는 척하다 재래식 기계로 재가공하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북 정권이 ‘첨단’과 ‘과학기술’을 외치고 CNC 도입 성과를 선전하는 것은 생필품 부족으로 허덕이는 주민의 불만을 완화하려는 노력이다. 올해 시정목표를 담은 신년공동사설에서 경공업 강화와 인민생활 향상 등 경제 이야기를 많이 한 것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해 놓고 연내 뭔가 보여주지 못하면 김정일 김정은 부자는 초조해질 것이다.
북이 ‘강성대국의 문을 열겠다’고 공언한 2012년이 코앞에 와 있다. 양문수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북한 학자들에 따르면 경제에서 강성대국의 의미는 전력 금속 석탄 시멘트 양곡 등의 생산이 북한 경제가 최고조였던 1987년 수준을 돌파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서방에서는 안 믿지만 북은 그해 1인당 국민소득을 2500달러로 친다. 한국은행이 추정한 2009년 북의 1인당 소득이 1000달러였는데 중국 베트남 같은 개혁개방도 없이 자본과 자원이 부족한 채로 몇 년 사이에 ‘어게인(again) 1987’이 가능할 성싶지 않다. 북은 요즘 ‘강성대국’ 소리를 자주 꺼내지 않는다고 한다.
북은 천안함 격침 등 잇단 도발로 한국의 돈줄이 끊기자 중국에 밀착하고 있다. 작년 무역의 83%가 중국과의 교역이었다. 이달엔 황금평과 나선지구에서 북-중 공동개발 착공식이 열렸다. 미국의 북한경제 전문가 브래들리 뱁슨 씨는 3월 한국수출입은행 북한조사팀과의 e메일 인터뷰에서 “북-중 경제관계 강화는 북한 내 시장경제 활동의 증가를 촉진시키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북-중 경협의 속도가 금세 높아지기엔 장애가 많다.
외자(外資)라면 모를까 ‘CNC 마법’만으로 인민생활 향상은 어렵다. 올 하반기 북한 정권의 고민이 클 것 같다. 뱁슨 씨는 세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경제성장을 모색하거나, 실패를 합리화하면서 기상이변 또는 남북관계 경색 등을 핑계로 대거나, 잘된 것처럼 가장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내부 불만을 외부로 향하게 하기 위해 대남 도발을 또 저지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