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 중간계투 3.2이닝 무실점 호투
기약없는 2군에선 후배들의 멘토 자처
이젠 아들의 스승의 이름으로 던질 것
“오늘도 불펜대기…1군이라 행복하죠”

신인왕, 다승왕, 현대왕조의 황태자, 닥터K, 그리고 100승 투수. 넥센 김수경의 이름 앞에는 언제나 화려한 수식어가 있을 것만 같았다. 노장이라고 부르기에는 아직 이른 서른 둘, 그러나 1군보다 2군에 머문 시간이 더 많아졌다. 김수경은 갓 태어난 아들, 그리고 영원한 스승 김시진 감독을 위해 다시 한번 힘차게 공을 뿌리고 있다. [스포츠동아 DB]
넥센 김수경 430일만에 1군 복귀
넥센에는 3명의 100승 투수가 있다. 김시진 감독과 정민태 투수코치(이상 124승), 그리고 김수경(111승)이다. 김수경이 10일 목동 삼성전에 앞서 1군 엔트리에 이름을 올림으로써, 이들 셋은 1군에서 다시 만났다.
1998년 신인왕, 1999년 탈삼진왕, 2000년 다승왕. 현역 가운데 김원형(SK·134승)에 이어 최다승 부문 2위. 하지만 너무나 오랜 2군 생활이었다. 김수경의 1군 복귀는 2010년 4월 이후 무려 430일만이었다. 그는 2군에서 무슨 생각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냈을까.
“마운드에 오를 생각을 하니까 정말 떨리더라고요. 마치 신인처럼….” 11일 목동 삼성전에서 1군 복귀 경기를 치른 소감이었다. 하지만 막상 마운드에 서니, 심장박동은 잦아들었다. 구위는 ‘닥터 K’로 명성을 떨치던 시절에 미치지 못하지만, 마음만은 평온했다.
조명이 내리쬐는 그라운드, 관중의 함성, 긴장된 분위기. 모두 익숙하던 것들이었다. 결국 중간계투로 나온 김수경은 3.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한 때는 그도 에이스였지만, 이제는 지고 있는 상황에서 역전의 발판을 마련하는 역할이다. 그의 입에서는 “패전처리”라는 단어가 나왔다. 하지만 목소리의 크기가 줄어들지는 않았다. 2군에서 누구 못지않게 굵은 땀방울을 흘렸고, 설레는 마음으로 1군의 부름을 받았기 때문이다.
“저도 처음에는 2군 매니저에게 ‘정말 1군가는 것이냐?’고 재차 되물었다니까요.” 여전히 앳된 얼굴처럼, “딱 스무 살의 김수경 같았다”고 했다.
○후배들에게 빌려준 ‘거인’의 어깨
“매일 매일 1군 중계를 보며 야구를 새롭게 배웠어요. 예전의 구위가 안나오더라도 타자를 상대하는 요령들을 연구했지요.” 인성과 성실성에서 김수경에 대해 의심하는 넥센 관계자는 없다. 그래서 그의 재기에 대한 주변의 바람은 더 간절하다. 김수경이라는 거인의 어깨에 걸터앉아 야구를 깨우쳐 간 후배들도 마찬가지다.
○아들을 위해, 스승을 위해
김수경은 5월, 결혼 5년 만에 아들을 얻었다. 1군 생활을 하면 홈경기 때 가족의 품에 안길 수 있다. 쌩글쌩글 웃는 아들 유한이의 얼굴을 보면, 하루의 피로가 날아간다. “확실히 책임감이 생겼어요. 아들에게 야구 잘하는 아빠가 되고 싶잖아요. 아직 말을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매일 아침 약속을 하고 나와요.”
아들 말고 또 한 분을 위해서라도 그는 “다시 일어서고 싶다”고 했다. 바로 영원한 스승 김시진 감독이다. 김수경의 프로입단 당시 현대의 투수코치였던 김 감독은 김수경을 100승 투수로 조련한 장본인이다. 그리고 김수경이 2군에서 뒤쳐져 있을 때도 틈틈이 용기를 불어넣어줬다. 김수경은 아들이 태어나던 날, 김 감독이 보낸 축하 문자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아, 보답을 해야 하는데….”
잠실|전영희 기자 (트위터@setupman11) setup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