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복잡한 도심에서 긴급 차량이 양보 받는 모습은 좀처럼 목격하기 어렵다. 동아일보DB
계곡을 가로질러 낮게 설치된 철제 구름다리에 머리를 부딪친 아들의 이마가 터져 있었고 상처 틈으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구급차를 부르기 애매한 위치, 인근에 응급실을 갖춘 병원은 없는 상황.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차에 아내와 아이를 싣고 서울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연휴 막바지 오후라 서울 가는 길은 가평부터 꽉 막혀 있었습니다.
짧은 시간 생각한 끝에 비교적 길이 한산한 강원 춘천으로 목적지를 바꿨습니다. 터진 상처야 꿰매면 된다지만 혹시라도 머리에 가해졌을지 모르는 충격이 걱정됐습니다. 비상 깜박이를 켜고 수시로 규정 속도를 초과해 신호와 과속카메라를 모두 무시하며 경춘국도를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경적을 울려가며 우여곡절 끝에 35분 만에 춘천 한림대 성심병원 응급실에 도착해 응급처치를 하고 머리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119로 전화해 구급차를 불렀더라면 더 일찍 올 수 있었을까?’ 이런 생각도 해봤습니다만 한국의 교통문화를 감안할 때 꼭 그랬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사이렌은 요란하게 울렸겠지만 차들은 여전히 길을 내주지 않았을 것이고, 구급차는 빠른 속도로 달리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죠.
여러 가지 분석이 있지만 한국에서 구급차들이 양보를 못 받는 이유는 결국 응급 상황은 ‘남의 일’이란 인식 때문이 아닐까요? 아무리 꽉 막힌 도로라도 운전자들이 한마음이 되면 구급차는 텅 빈 도로를 달리듯 빠르게 달릴 수 있습니다. QR코드 속 독일 구급차처럼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