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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가 본 이 책]無人전쟁의 非인간성

입력 | 2011-06-18 03:00:00

◇하이테크 전쟁/피터 W 싱어 지음·권영근 옮김/648쪽·2만4500원·지안출판사




미국에서 개발된 X-47 무인전투기. 공중에서가장 위험한 역할을 수행하는 전투기로 미래에 유인 전투기와 폭격기를 완전히 대체할 목적으로 설계됐다. 지안출판사 제공

뇌-로봇 인터페이스 기술이 발달할 미래. 들쥐 뇌에 칩을 이식해 리모컨으로 쥐들을 이동시켜 적진에 침투시킨다. 그들의 등엔 폭탄이 설치돼 있다. 쥐떼에 이어 미국 본토에서 원격조종되는 로봇병사들이 적군과 총격전을 벌이고, 무인전투기가 미사일 폭격을 가한다. 뒤이어 합류한 로봇 평화유지군들이 자살폭탄테러범들을 일망타진한다.

정재승 교수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왼쪽),  題字 죽봉 황성현(오른쪽)

2020년 미래의 전투에 대한 워싱턴 펜타곤(미 국방부)의 가상시나리오다. 공상과학(SF) 영화 속 이야기 같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로봇병사가 군인을 대신해 전투에 투입된 지는 이미 오래됐다. 2003년 미-영 연합군이 벌인 이라크전에서만 30여 종의 로봇병사 1만5000대가 투입됐다. 무인항공기 수백 대가 이라크에서 1만2000km 떨어진 미 본토에서 원격조종됐다. 이라크전은 로봇 대리전의 실험무대였던 것이다. 세계 최초로 로봇청소기 ‘룸바’를 만든 매사추세츠공대(MIT) 공학박사 출신들의 벤처기업 아이로봇은 폭발물 해체용 로봇 ‘팩봇’을 만들어 창립 15년 만에 시가총액 6억 달러가 넘는 기업으로 급성장했다.

미국 싱크탱크 중 하나인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인 피터 싱어는 이 책에서 로봇테크놀로지가 바꾸어놓을 전쟁 양상에 대해 매우 설득력 있는 전망을 내놓는다. ‘현대 전쟁의 새로운 변화’는 피터 싱어의 오랜 연구주제다. 그는 전작들을 통해 ‘사설 용병산업의 부상’으로 상업화되고 ‘소년병의 등장’으로 비인간적으로 변해가는 현대전의 새로운 양상에 주목한 바 있다.

그가 새롭게 내놓은 이번 책의 화두는 “화약의 등장 이후 전쟁의 모습을 가장 크게 변화시킬 기술적 진보는 무엇인가”이다. 그는 이 질문에 ‘그것은 로봇혁명’이라고 단언한다. 기계적 움직임 제어, 인공지능 및 자율판단시스템, 원거리 실시간 통신기술, 뇌-기계 인터페이스 등 로봇제반기술이 급속도로 발달하고 있다. 조만간 벌어질 로봇혁명을 통해 안방에서 로봇을 원격조종해 전투를 치르는 세상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 책의 미덕은 로봇테크놀로지, 뇌-기계 인터페이스, 인공지능, 통신제어기술 등 로봇테크놀로지의 최전선이 현재 어디까지 왔는지를 풍부한 자료와 광범위한 조사를 통해 꼼꼼히 소개했다는 점이다. 로봇 관련 공학자들에게 이보다 더 유용한 책이 있을까 싶다. 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테크놀로지의 현주소’를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로봇혁명의 기술적 측면만 강조하지 않고 역사적인 맥락부터 윤리적인 문제까지 다양한 측면에서 조망한 점도 돋보인다. “이런 기발한 생각은 누가 처음 했을까?” 싶은 대목에선 여지없이 SF 영화가 인용되고, “현대 군사기술은 문학적 상상력으로 가득 차 있구나!” 싶은 대목에선 과학소설의 한 대목이 바로 등장한다.

이라크전에서 사용된 최초의 지상공격용 로봇스워드. 원격으로 조종된다(왼쪽), 이라크전부터 실전에 투입된 대표적인 무인무장 헬기 파이어 스카우트.

미국 펜타곤과 네오콘의 위험한 주장들을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있는 이 책의 백미는 인간은 사라지고 게임으로 전락한 전투의 위험성을 고발하는 대목이다. 이른바 ‘위험 없는 전쟁의 역설’이 그것이다. 군인이 투입되지 않은 로봇대리전은 그 덕분에 인적 피해는 크게 줄었지만, 우리로 하여금 전쟁의 비윤리성을 무감각하게 느끼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리모컨으로 조종되는 전쟁은 소니 플레이스테이션을 켜듯 쉽게 결정된다. 그 파괴성은 ‘모탈 컴뱃’ 게임에서 한 판 진 것 같은 아쉬움에 그저 묻힐 뿐이다. 실감나게 인지되지 못한 전쟁의 참혹함은 더 잦은 전쟁을 낳을 수 있다. 로봇혁명이 전쟁을 윤리의 영역 밖으로 몰아내고 있다는 지적이다.

인간의 개입 없이 자동으로 무기를 발사할 수 있는 ‘자율형 무기장착 로봇’은 인간에게 그 자체로 위협이 될 수 있다. 실제로 1988년 제1차 이라크전에서 미 이지스함의 자동 레이더시스템이 이란의 민간여객기를 전투기로 오인해 격추한 사건이 발생했다. 어린이 66명을 포함해 승객 290명이 모두 사망하는 끔찍한 참사가 벌어졌다. 스스로 사격 판단을 내리는 자율로봇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미 육군 대령 토머스 애덤스의 말처럼 ‘전쟁은 지극히 인간적인 목적을 위한, 인간적인 욕구에서 비롯된, 인간적인 현상’임에도 인간 대신 로봇의 대리전 양상으로 치달으면서 ‘전쟁의 비인간성’은 극에 달하게 되는 역설적 상황이다.

테크놀로지의 오용을 막는 것이 과학기술자의 사명이기도 한 현대 사회에서 가장 불행한 사실은 과학소설가 아이작 아시모프의 지적처럼 “사회가 지혜를 습득하는 속도보다 과학이 지식을 습득하는 속도가 더 빠르다”는 것이다. 이 책은 수많은 전쟁 사례와 과학적 지식을 쏟아내며 ‘미래 전쟁’에 대한 통찰력을 보여준다. 하지만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 깊은 화두를 얻게 된다.

정재승 교수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