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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칼럼]등록금 반값 세일 ‘대학을 부탁해’

입력 | 2011-06-19 20:00:00


황호택 논설위원

1960, 70년대에는 사각 학사모를 쓴 아들 사진을 집 안에 걸어놓는 풍습이 있었다. 부모의 재력과 교육열 그리고 아들 농사의 성공을 과시하는 사진이었다. 지금처럼 대학생이 흔하지 않던 시절의 이야기다. 1970년 전문대 이상 취학률은 5.4%, 1975년에는 6.7%였다. 이 시절 대학 졸업자들은 직장을 골라잡았고 어느 분야로 진출하든 리더의 자리로 올라갈 수 있었다.

1945년 광복 당시 중학교 이상 학력 소지자는 전체 인구의 1% 미만이었다. 문맹률(文盲率)은 53%에 이르렀고 특히 여성의 문맹률이 높았다. 충무아트홀에서 어제까지 상영한 뮤지컬 ‘엄마를 부탁해’(원작 신경숙)에 등장하는 ‘까막눈 엄마’의 전설같은 이야기에 젊은 세대들은 공감(共感)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한국은 반세기 남짓에 대학취학률이 70.1%(2010년), 25∼34세의 고등교육 이수율이 세계 1위인 나라가 됐다.

1961년 1인당 국민소득은 82달러였고 1965년에야 100달러를 턱걸이해 105달러가 됐다. 우리가 45년 만에 그 200배인 2만 달러 고지를 넘어서는 데는 교육의 힘이 컸다. 한국교육은 뜨거운 교육열을 바탕으로 경제발전에 필요한 인력을 양성했고, 경제발전은 교육에 필요한 재원을 제공함으로써 교육발전을 이끌었다.

지구상에서 대학생이 너무 많아서 문제가 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할 것이다. 대학수학능력이 모자라도 마음만 먹으면 대학에 갈 수 있게 되면서 대졸 백수가 우리 사회의 골칫거리로 대두했다. 등록금만 꼬박꼬박 챙기는 부실 대학이 전국에 널려 있다. 정부가 일률적으로 반값 등록금 지원을 하면 숨넘어가는 환자에게 산소호흡기를 달아주는 효과밖에 없다. 반면에 세계적인 대학들과 경쟁하기 위해 교수 및 시설 확충 투자를 필요로 하는 대학들도 있다. 대학을 평준화할 뜻이 아니라면 정부 지원에 옥석을 구별해야 한다. 그래야 국가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교수 직원, 등록금 고통 분담하라

대학 등록금에 보태줄 예산이 있다면 가난한 집안 출신 학생에게 장학금을 더 주거나 실업고 학생들을 지원하는 것이 옳다. 실업고나 전문대의 교육 여건을 개선하고 정책적으로 취업률을 높여준다면 4년제 대학에 다니느라 젊음과 돈을 낭비하는 사회 분위기를 바꿔 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대학의 교수와 직원들도 학생들의 등록금 고통을 덜어주는 데 동참할 필요가 있다. 대부분 대학에서는 등록금 수입의 50% 이상을 인건비로 지출한다. 지방대 S 총장은 “세계 랭킹을 다투는 대학이 아니라면 연구 기능을 축소하고 교육 중심으로 전환해 교수들의 강의시수를 늘리면 등록금을 낮출 여지가 크다”고 말했다. 그는 “교수들의 연구를 위해 수업시수를 줄여주고 연구비 지원까지 해주지만 연구논문이라곤 고작 3, 4명만 읽는 게 태반”이라고 실정을 전했다. 골프년(年) 소리를 듣는 교수 안식년을 줄이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총장 선출제도는 교직원 과잉복지의 온상이다. 직선제든 간선제든 총장 후보는 환심을 사기 위해 봉급 인상을 포함해 복지 선물세트를 내놓아야만 한다. 그래도 교수들은 외국 명문대에서 힘들게 박사 따고 강의 경력을 쌓다가 30대 중후반에야 조교수가 된다. 부교수를 거쳐 테뉴어(종신교수)가 되려면 다시 8, 9년이 걸린다. 대학 직원은 약자라는 인식이 있지만 일의 강도는 기업에 비하면 훨씬 낮고 업무 보조요원으로 근로장학생을 쓴다. 교수와 직원 구분 않고 단일호봉을 적용하는 일부 대학의 직원 평균연봉은 7000만∼8000만 원을 오르내린다. 억대 연봉을 받는 직원도 많다. 직원들은 방학 때 쉬거나 단축근무를 한다. 학부모들은 등록금 고통으로 허리가 휘는데 직원들만 ‘신이 숨겨 놓은 자리’를 즐긴다면 공정사회라고 할 수 없다.

세계랭킹 상위 대학 많이 나와야

민주당이 ‘반값’과 ‘무상’ 시리즈를 남발하면서 복지정책의 주목도가 떨어지고 있다. 이번 논쟁은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가 끄집어내면서 폭발력이 생겼다. 20, 30대에서 민주당에 밀리는 한나라당으로서 360만 명에 이르는 대학생 대학원생을 노린 회심의 카드일 수 있지만 과연 정책 하나로 표심이 휘딱휘딱 뒤집어질지 회의적이다. 정책 베끼기가 만연해 유권자들은 어느 게 어느 당의 공약인지도 혼란스럽다. 아주대와 건국대 총장을 지낸 오명 KAIST 이사장은 “정부의 지원이 있고 대학들이 자구노력을 하면 등록금을 20%가량은 낮출 수 있다”면서도 신중한 검토를 거치지 않고 불쑥 반값 등록금을 터뜨린 감이 있다고 말했다.

경제규모 13위인 한국에서 고작 서울대와 KAIST 정도가 세계 대학 랭킹 100위 안에 든다. 초라한 성적표다. 대학경쟁력이 곧 국가경쟁력이다. 10위권을 넘보는 대학도 생기고 100위권 안에 드는 대학이 대여섯 개는 나와야 한다. 대학졸업장의 반값 세일에 정신이 팔려 있을 때가 아니다.

황호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