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막눈으로 산 답답한 세월늦깎이 배움으로 恨 풀어요”
부산 해운대구 반여1동 주민센터에 마련된 ‘장산 등불 문해학교’(왼쪽)와 부산 해운대구 반여4동 삼어초등학교에서 운영 중인 ‘성인 한글 문해학교’에서 할머니들이 한글쓰기를 배우고 있다. 반여1동 주민센터·삼어초등학교 제공
반여1동 주민센터는 매주 화, 금요일 오후 2시 ‘장산 등불 문해학교’를 운영한다. 4월 문을 연 이 학교는 배움의 기회를 놓친 주민 50여 명이 공부를 통해 자존감을 되찾는 소중한 공간. 12월 말까지 30주 120시간에 걸쳐 한글, 숫자, 한자, 컴퓨터 교육을 받는다. 문화탐방과 체험학습 등 1년간 수업을 마치면 수료증도 준다. 수업은 교사와 보조교사 등 4명이 맡는다.
수강생은 공부를 하라며 남편이 대신 등록해준 주부에서부터 며느리가 등록해줬다고 자랑하는 시어머니 등 50대에서 70대까지 다양하다. 박모 씨(64)는 “비록 늦은 나이지만 공부를 할 수 있어 정말 행복하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박 씨는 어린 시절 “여자는 많이 배워서는 안 된다”는 아버지 말씀 때문에 학교와 담을 쌓았다. 이후 결혼해서는 “왜 한글 공부도 안 했느냐”는 남편 때문에 힘든 일이 많았다는 것.
삼어초등학교는 배움에 대한 한을 품고 살아온 할머니들을 대상으로 ‘성인 한글 문해학교’ 입학식을 가졌다. 초등학교에서 운영하는 한글교실은 이 학교가 부산에서 유일하다. 지난해 운영을 시작해 졸업생 14명을 배출했다.
입학생은 최고령 배옥연 할머니(87)와 막내 윤청 할머니(71) 등 모두 15명. 배 할머니는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동생들을 돌보느라 배움의 기회를 놓치고 까막눈으로 살아온 세월은 참으로 답답했다”며 “버스 노선과 집에 온 우편물 내용이라도 알기 위해 한글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이들은 앞으로 6개월간 화, 금요일 오전 10시∼낮 12시 한글을 배운다. 덧셈과 뺄셈도 익힌다. 8월 한 달은 방학이다. 강사는 삼어초 서호숙 교사(48·여)와 학부모 자원봉사자 2명 등 3명이다. 학생들에게는 교재와 간식이 제공된다. 행정 및 재정 지원은 해운대구와 반여4동 주민자치센터에서 한다. 최선화 교장은 “우리 주위에는 배움의 기회를 놓친 어르신이 많이 있다”며 “한글교실 운영은 사회교육 차원에서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조용휘 기자 silen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