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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위-한국거래소-상장기업, 요지경 ‘갑-을-병 먹이사슬’

입력 | 2011-06-24 03:00:00

상장기업서 돈 걷어 연찬회 연 거래소… 남는 돈 금감위 간부들에 골프-술접대




한국거래소 직원들이 상장기업 대상 연찬회를 열면서 행사 비용을 부풀려 수천만 원을 챙기고 이 돈으로 금융감독위원회(금융위원회의 전신)와 금융감독원 간부들에게 골프와 술 접대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거래소는 직원 평균연봉이 1억448만 원(2010년 기준)으로 공기업 중 가장 높다. 이런 기관이 감독대상인 상장기업들에 실제 소요 비용보다 더 많은 액수를 참가비로 걷은 뒤 남는 돈으로 상급기관에 로비를 하고 일부는 개인 용도로 착복한 것이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2006년 6월∼2007년 10월 5차례에 걸쳐 제주도에서 ‘상장법인 공시책임자 연찬회’를 열면서 특정 여행사에 행사를 몰아주고 이 대가로 여행사로부터 2100여만 원을 받은 혐의(뇌물수수 등)로 한국거래소 팀장급 직원 김모 씨(42)와 정모 씨(44), 하모 씨(45) 등 3명을 23일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 조사 결과 김 씨 등은 연찬회 1회 개최 비용을 8000만 원으로 부풀려 잡고 2000만 원은 한국거래소가, 나머지 6000만 원은 상장기업들이 부담하도록 했다. 김 씨 등은 평소 친분이 있는 J여행사에 연찬회를 5차례 몰아주는 대가로 건당 200만∼600만 원의 리베이트를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김 씨 등은 이렇게 마련한 돈으로 연찬회에 강사로 초빙한 금융위와 금감원 간부 11명에게 골프와 술 접대를 하고 항공비와 호텔숙박비까지 대신 내준 것으로 드러났다. 접대를 받은 금융당국 간부는 과장급에서 국장급까지 다양했다. 경찰 관계자는 “금융위의 한 과장은 1시간 강의료로 50만 원을 받은 뒤 현금 50만 원을 추가로 요구하는 등 금융당국 간부들이 골프와 술 접대를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말했다.

금감위는 선물거래업 허가권 등 한국거래소에 대해 각종 검사와 조사권한을 갖고 있다. 금감원도 금감위의 결정에 따라 한국거래소를 실제로 감독하는 기관이다. 한국거래소 입장에선 집중 관리 대상이었던 셈이다.

반면 한국거래소는 상장기업에겐 ‘갑’의 위치에 있는 곳. 한국거래소는 기업들의 사업내용이나 재무상황, 영업실적 등 주요 정보를 투자자들에게 알리는 공시업무를 한다. 기업이 공시의무를 위반한 경우 해당 업체를 관리종목이나 불성실공시 법인으로 지정하고 상장을 폐지하는 등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이 때문인지 한국거래소가 여는 연찬회에는 현대건설과 두산건설, C&중공업 등 국내 주요 기업들이 대부분 참석했다. 한국거래소 측은 연찬회 회식 도중 술값이 부족하자 기업 쪽 참석자들에게 430여만 원을 대신 부담하도록 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한국거래소 간부들과 상장기업 임원들이 공시나 상장폐지와 관련해 특혜를 주거나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금품이 오갔을 개연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이에 대해 금감위의 후신인 금융위 측은 “타 기관 소속 공무원과 민간인도 (신분을) 금융위원회로 기술해 명예를 실추시켰다”고 주장했다. 이어 “관계 공무원에게 확인해보니 금융위 모 과장이 받았다는 골프접대 20만 원은 본인 개인카드로 결제한 증빙이 있고, 250만 원짜리 유흥주점 접대를 받았다는 모 서기관도 참석하지 않았다”고 했다.

한국거래소는 “공시책임자 교육은 공시업무의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한 취지로 관련 규정에 따라 개최한 것이며 증권회사 투자은행(IB) 담당 임원 등을 대상으로 한 워크숍도 상장 및 회계제도 등의 개선 방향을 마련하기 위해 열었다”며 “연찬회가 거래소 간부와 상장회사 임원의 유착의 장이라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