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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북카페]英 베인브리지 미완성 유작 ‘물방울…’

입력 | 2011-06-25 03:00:00

1968년 로버트 케네디 암살 다룬 스릴러
치정극과 결부시킨 독특한 발상 화제




“제발 30일의 시간만 더 주세요. 나는 이 소설을 완성해야 합니다.”

영국의 대표적인 여성작가 베릴 베인브리지는 암이 재발해 온몸에 호스를 연결한 채 병상에 누워 있으면서도 주치의에게 이같이 애원했다. 스스로 죽어가고 있음을 알면서도 그는 생애 마지막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이처럼 혼신의 힘을 다했다. 애석하게도 2010년 7월 2일 그는 78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작가의 오랜 친구이자 편집자이기도 한 브렌던 킹이 그의 유작 ‘물방울무늬 원피스를 입은 소녀(The Girl in the Polka Dot Dress)’를 올해 5월 출간함으로써 고인의 오랜 염원이 이뤄졌다. 킹은 “마지막으로 넘겨받은 원고와 구두로 직접 들었던 설명들을 제외한, 그 어떠한 다른 자료도 추가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소설은 저자 베인브리지가 1968년 미국을 여행했던 경험담을 토대로 쓴 것이다. 영국 여자 로즈와 미국 남자 해럴드가 의사인 윌러 박사를 찾아 미국 대륙을 여행하는, 얼핏 들으면 여행기 혹은 러브 스토리 같지만 실제의 소설은 스릴러에 가깝다.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로즈는 15세 때 비슷한 또래의 남자친구와 사귀다 임신을 해 출산한 후 아기를 입양 보냈던 괴로운 기억을 안고 있다. 마침 영국을 방문 중이었던 윌러 박사는 이러한 로즈와 우연히 만나게 되며 로즈의 피폐한 마음을 달래준다. 이후 윌러 박사는 로즈의 구세주이자 정신적 지지자로 남게 된다. 해럴드와 윌러 박사의 인연은 이와 정반대다. 해럴드의 부인은 윌러 박사와 혼외정사를 벌이다 윌러 박사에게 버림받은 후 자살했다. 낙심한 해럴드는 윌러 박사에게 복수를 하고자 한다. 이렇게 상반된 목적을 가진 두 남녀는 미국을 여행하며 윌러 박사를 찾아 헤맨다.

소설은 그들이 그렇게 찾고자 했던 윌러 박사가 아니라 예상치 못했던 다른 인물이 두 사람과 연계됐음을 시사하며 끝이 난다. 총을 가진 해럴드와 하얀 바탕에 작은 ‘땡땡이’ 무늬가 있는 원피스를 입은 로즈가 앰배서더 호텔로 들어가는 장면이 묘사되고, 곧이어 1968년 6월 6일자 로스앤젤레스타임스의 실제 신문기사가 발췌돼 실린다. “상원의원 로버트 케네디가 총을 맞고 쓰러진 앰배서더 호텔에 하얀 바탕에 물방울 무늬가 찍힌 원피스를 입은 한 여자가 뛰어들어와 ‘우리가 쐈어요’라고 말했다.”

옵서버지 기자인 멜빈 브랙 씨는 “정녕 이게 끝인가”라고 했다. 모든 정황은 해럴드와 로즈가 로버트 케네디를 총으로 쐈다고 말하고 있다. 왜 두 사람은 뜬금없이 케네디를 죽였을까? 아니면 이 모든 게 우연일 뿐 두 사람은 이 사건과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일까? 아마도 작가가 마지막까지 기를 쓰고 완성하고자 했던 마지막은 로버트 케네디와 해럴드, 로즈 사이의 연결고리가 아니었을까? 결말의 불완전함에도 타임스가 2008년 선정한 50명의 영국 작가 중 한 명이자 휘트브레드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이 위대한 작가의 마지막 작품은 독특한 발상과 중독성 있는 문장으로 영국 독자들을 끌어당기고 있다.

런던=안주현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