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놀이기구를 보고 옷이 잘 꼬이지 않는 ‘워블세탁기’를 개발한 표상연 삼성전자 수석연구원. 손에 든 세탁판이 놀이기구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특허’ 제품이다.
2008년 9월 표상연 삼성전자 수석연구원은 답답한 마음에 놀이공원을 찾았다. 옷이 꼬이지 않는 전자동 세탁기를 만들겠다고 큰소리친 뒤 2월에 팀을 조직했지만 신통한 아이디어가 없었다. 마라톤 회의에 지친 그와 팀원들은 바람이나 쐬자며 무작정 나왔다.
그런데 빙글빙글 돌아가는 놀이기구가 전자동 세탁기 바닥의 동그란 세탁판으로, 그 안의 사람들은 세탁기 빨랫감으로 보였다. 문득 인천 월미도의 인기 놀이기구 ‘디스코 팡팡’이 머릿속을 스쳤다. 디스크자키가 입담을 뽐내며 놀이기구를 상하 좌우로 흔드는 놀이기구다. 앉은 사람은 넘어뜨리고, 붙어 있는 사람은 서로 떨어지게도 한다.
일명 ‘통돌이’로 알려진 전자동 세탁기는 10여 년 전 드럼 세탁기에 완전히 밀려난 ‘구식’ 가전이다. 하지만 개발자들은 ‘비주류에도 혁신은 있다’는 믿음으로 끈질기게 달라붙었다. 표 수석은 “100% 상품이 된다는 보장은 없었지만 22년 동안 세탁기만 연구하면서 고치고 싶던 단점을 꼭 해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 ‘구식’ 가전의 부활로 빛 보는 혁신

전자동 세탁기는 비슷한 용량의 드럼 세탁기 가격대의 60∼70% 수준인 데다 물의 온도를 높여주는 히터가 없어 전기료를 아낄 수 있다. 드럼 세탁기를 쓰다 전자동으로 돌아온 소비자도 적지 않았다. 그 결과 삼성전자의 2009년 전자동 세탁기 매출액은 전년보다 27% 늘어나 10년래에 최고점을 찍었다.
시장이 갑자기 변하니 표 수석과 팀원들이 3년 동안 매달린 혁신기술인 ‘워블 세탁판’이 쓰일 곳이 많아졌다. 수천만 원어치 옷을 사 빨래해가며 8개의 특허를 출원한 기술이다. 삼성은 이달 미국시장에 처음으로 전자동 세탁기를 내놓았고, 표 수석의 워블 세탁기도 세계시장에 곧 선보일 예정이다.
○ 냉장고도 ‘비주류’가 뜬다
분리형 냉장고 ‘컬렉션 시리즈’를 개발해낸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 주역들이 모였다. 왼쪽부터 양옥모 과장, 최동순 차장, 박상현 대리. 삼성전자 제공
그의 취미이자 일인 ‘가정 방문’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최 차장은 “대용량 경쟁이 심해지면서 부엌이 작은 신혼집들은 덩치가 큰 양문형 냉장고를 어디에 둬야 할지 고민하더라”며 “안방이나 심지어 다용도실을 쓰는 사람도 있었다”고 전했다.
‘컬렉션시리즈’는 날개 돋친 듯 팔렸다. 예상보다 2배 높은 매출을 올렸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