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럼즈펠드 전 미국 국방장관은 재임 시절 집무실 책상 유리 밑에 한반도의 야간 위성사진을 깔아 놓았다. 불빛이 환한 남한과 캄캄한 북한의 모습이 극적으로 대비되는 이 사진은 같은 민족이라도 이념과 체제에 따라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럼즈펠드는 “나는 매일 이 사진을 보며 한반도 문제를 생각한다”고 말했다. 피터 페이스 전 미 합참의장도 베트남전에서 전사한 첫 부하의 사진을 집무실 책상 위에 놓고 일했다. 책상 주변의 사진들은 간절한 소망과 다짐의 상징이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 집무실 정면에는 이명박 대통령 사진이 걸려 있다. 하지만 김 장관의 의자 뒤편 벽에는 북한 국방위원장 김정일의 사진과 함께 인민무력부장 김영춘, 총참모장 이영호 등 북한군 수뇌부의 사진이 붙어 있다. 김 장관이 북한군 수뇌부 사진을 집무실에 붙여 놓은 것은 그의 각오를 보여준다. 한민구 합참의장 집무실에도 카운터 파트에 해당하는 이영호 총참모장의 사진이 걸려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정보원에는 김정일을 비롯한 북한 주요 인물의 대역(代役)이 있다. 이 대역들은 실제 인물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면서 자신의 판단이 나중에 실제 인물이 한 것과 비교해서 동일해지도록 훈련한다. 이런 노력을 통해 북한 수뇌부가 어떤 생각과 판단을 할지를 상상하고 대처 능력을 높이게 된다. 국방부 장관과 합참의장도 북한군 수뇌부의 대역을 지정해 지략을 겨뤄보면 도움이 될 수 있다.
▷남북한 사이에는 1999년 이후 5차례 무력충돌이 있었다. 대부분 북한의 기습으로 시작됐으며 전적은 2승 1무 2패였다. 1999년 1차 서해교전에서 패한 북한은 2002년 2차 서해교전으로 설욕전을 했다. 2009년 북한은 북방한계선(NLL) 침범으로 시작한 대청해전에서 쓴맛을 봤다. 우리가 완패한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은 대청해전에서 패배한 북한의 보복으로 볼 수 있다. 지난해 11월 연평도 포격은 승패를 가리기 어렵지만 우리로선 충분히 응징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김 장관이 북한의 맞상대인 김영춘의 사진을 보며 그가 어떤 기습공격을 구상할지 생각하다 보면 우리의 빈틈을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