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예술하는 습관’대본★★★★ 연기★★★☆ 연출★★★☆ 무대★★★☆
영국 출신의 세계적 시인 위스턴 휴 오든과 작곡가 벤저민 브리튼의 감춰진 삶을 극중극 형식으로 풀어낸 연극 ‘예술하는 습관’. 왼쪽부터 오든 역을 맡은 배우 피츠 역의 이호재 씨, 전기작가 험프리 카펜터 역을 맡은 배우 도널드 역의 민복기 씨, 브리튼 역을 맡은 배우 헨리 역의 양재성 씨, 무대감독 케이 역을맡은 오지혜 씨. 명동예술극장 제공
노작곡가도 있다. 역시 20대부터 유명해졌고 30대에 오페라 ‘피터 그라임스’를 발표하며 국제적 명성을 획득했다. 헨리 제임스의 심리소설을 오페라로 옮긴 ‘나사의 회전’과 말년에 발표한 오페라 ‘베니스에서의 죽음’(토마스 만 원작)으로도 유명하다. 작곡가 벤저민 브리튼(1913∼1976)이다.
연극 ‘예술하는 습관’(박정희 연출)은 이 두 명의 예술가를 다룬다. 물론 작품을 파고들다 보면 그 심오함에 감탄하게 될 인물들이다. 하지만 현대 예술에 조예가 깊지 않고서는 이름이 낯선 것도 당연하다. 그들의 모국에서조차 두 사람의 작품을 제대로 향유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아마 영국 영화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에서 낭송된 오든의 시 ‘장례식 블루스’를 기억하거나 어린이 음악회에서 해설을 곁들인 브리튼의 ‘청소년을 위한 관현악 입문’을 들어본 정도 아닐까.
영국 출신의 세계적 예술가란 점을 빼고도 두 사람은 동성애자(게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같은 게이라도 둘은 대조적인데 오든(이호재)이 싱크대에 오줌 싸고 아무데서나 방귀 뀌는 무례한 게이였다면 브리튼(양재성)은 좀 더 우아하면서도 어린 남자아이에게 집착하는 게이였다. 베닛은 두 사람을 연결해줄 징검다리로 두 사람의 전기를 썼던 험프리 카펜터(민복기)를 등장시킨다. 카펜터의 시각을 빌려 두 위대한 예술가의 숨겨진 삶을 까발리는 것이다. 오든이 미국으로 망명한 이유 중 하나가 동성애 때문이라든가 브리튼이 마이클 잭슨 뺨치게 많은 어린이와 사고(?)를 쳤지만 정작 한 번도 스캔들이 터진 적이 없다는 것들이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좋은 예술가는 죽은 예술가뿐”이라는 반(反)예술가 선언을 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오히려 위대한 예술가를 동성애자로 등치시킴으로써 그들 역시 ‘사회적 소수자’에 불과하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그들이 마스터니 마에스트로로 불리며 아무리 대단한 취급을 받더라도 그들은 영원한 비주류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그들이 예술적 창조의 원동력으로 삼고난 뒤 휴지처럼 버려버린 남창(男娼)과 어린 소년들이야말로 그들의 분신과 같은 존재다.
연극 속 극중극 제목 ‘칼리반의 날(Caliban's Day)’은 이를 겨냥한 것이다. 이는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에 대해 논하면서 주인공 프로스페로의 노예이자 돌연변이인 칼리반을 내세웠던 오든의 장시 ‘바다와 거울’을 환기시키는 극적 장치다. 작품 속에서 항상 주변부적 존재에 관심을 기울였던 예술가들이 정작 삶에선 왜 그토록 냉정했던 걸까. 영국이 자랑하는 두 거장의 삶을 파고들면서 작가 베닛이 아프게 박아놓은 쐐기다.
7월 10일까지 서울 명동예술극장. 1만5000∼4만 원. 1644-2003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