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식 수석논설위원
‘큰 이익’보다 신용 중시한 옛 상인
저소득층이라도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게 배려하는 나라로 미국이 있다. 미국 곳곳에 자리 잡은 대형마트에는 전체적인 소득 수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생필품들로 가득 차 있다. 미국 생활에 필수인 자동차를 움직이기 위한 휘발유값도 그동안 많이 올랐다지만 한국의 절반을 약간 웃도는 수준이다. 일본의 대중식당에서 직장인들이 점심 한 끼를 해결하려면 500엔(약 6700원) 안팎의 가격으로도 가능하다. 일본의 국민소득과 물가 수준을 감안하면 싼 셈이다.
한국의 높은 물가는 세금, 정부의 정책 실패 등 여러 요인이 작용한 결과이지만 그 한 축으로 공급자의 책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소비자를 상대로 무조건 이윤을 뽑아내면 된다는 풍토가 어느새 뿌리내려 있다. 심지어 대학조차도 수요자인 학생들을 상대로 등록금을 올리는 편한 방식으로 운영비용을 조달해 왔다. 이익을 향해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집단이 상인(商人)이라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도 과도한 이윤을 자제했던 상도(商道)나 상업윤리는 분명히 존재했다.
생활물가苦 덜어주기 협조해야
‘상인’이라는 말을 처음 만들어낸 중국의 대표적인 상인 그룹은 산시(山西) 성에 거점을 둔 진상(晋商)이었다. 명나라와 청나라 시대에 걸쳐 500년 이상 거상으로 자리 잡았던 이들은 고객에게 부당한 이익을 취하거나 속이는 일을 가장 경계했다. 이런 일이 발각되면 당장 퇴출될 뿐 아니라 고향에 돌아가서도 냉대를 받았다.
일본의 경영이념으로 요즘도 자주 오르내리는 것이 ‘삼위일체’ 정신이다. 18세기 오미 지역 상인이었던 나카무라 지헤에가 강조한 이 정신은 ‘상거래는 파는 사람, 사는 사람, 세상 사람 모두에게 다 좋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삼베를 팔아 큰돈을 번 나카무라는 “단번에 많은 이익을 바라지 말고 먼저 고객을 생각하는 장사를 해야 한다”는 유훈을 남겼다.
한국 중국 일본 세 나라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는 공통된 신분 체계를 갖고 있었다. 이 체계 속에서 상인들은 가장 낮은 계급이었다. 옛 상인들이 나름대로 상도를 지키려고 한 것은 신분의 한계 속에서 더 길게 내다보고 지속가능한 활동을 펴나가기 위한 지혜이기도 했다. 그때와 비교하면 오늘날의 대기업 등은 반대로 우월적 위치에 있다. 그만큼 상인 스스로 상도에서 벗어나고 싶은 유혹이 강하게 작용할 수 있다.
2000년 최인호 씨의 소설 ‘상도’가 선풍을 일으켰다. 너도나도 이익 챙기기에만 골몰하는 세태 속에서 독자들은 조선시대의 거상 임상옥(1779∼1855)이 상도를 추구하는 모습에 매료됐다. 임상옥이 갖고 있었다는 계영배(술이 어느 정도 채워지면 옆으로 흘러내리게 돼 있는 술잔·절제를 의미함)는 화제가 됐다. 16세기를 전후해 국제무역을 장악했던 네덜란드는 역사상 가장 풍요했던 나라로 꼽혔다. 당시 네덜란드 상인들의 집에는 한 귀퉁이에 썩은 과일이나 생선을 그려 넣은 정물화를 걸어놓는 것이 유행이었다. 상인들은 그림을 보면서 ‘소멸을 생각하라’는 메시지를 되새기곤 했다. 치솟는 생활물가 속에서 오늘의 상도는 어떠해야 하는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