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초유의 사태 대혼란… 黨보다 더 깜짝 놀란 청와대
《 변화와 쇄신을 내건 한나라당의 7·4전당대회가 갈등과 혼란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당 대표 ‘경선 룰’을 정한 당 전국위원회의 의결에 대해 법원이 28일 “헌법상 정당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을 근본적으로 위배했다”며 일부 효력을 정지시켰다. 현재 당권주자들끼리 서로 ‘줄 세우기’ 공방을 벌이며 치고받는 상황에서 게임의 룰 자체가 비민주적으로 정해졌다는 법원의 결정까지 나오자 집권 여당에 대한 비판과 냉소적 반응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
○ 전대 어떻게 될까
심각한 비상대책위 28일 법원이 한나라당의 전당대회 경선 룰 일부에 대해 효력정지 판결을 내리자 급히 소집된 당 비상대책위원회가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정의화 비대위원장(가운데)이 굳은 표정으로 보고를 받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한나라당은 이날 오후 9시 긴급 비상대책위원회 회의를 열어 다음 달 2일 전국위를 다시 개최하기로 했다. 전국위 의장인 이해봉 의원이 이달 7일 회의에 참석한 전국위원들에게 표결권을 주지 않은 채 266명의 위임장을 근거로 모든 안건을 의결해버린 것은 위법했다는 법원의 결정에 따른 것이다. ‘전국위 재의결’이라는 특단의 조치가 없으면 전대 이후 오히려 당이 사분오열되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탓이다.
전체 전국위원 741명 중 과반수(371명)가 참석해야 하는 것도 숙제다. 이달 7일 회의 때 참석자는 164명에 불과했다. 한나라당이 다음 달 2일 여는 전국위 회의에 재적 과반수가 참석하지 않으면 바로 7·4전대에 당헌 개정안을 올리기로 한 것은 이 때문이다.
또 조직세가 앞서는 친이(친이명박)계가 당 대표 경선에서 여론조사를 반영하지 말자며 뭉칠 경우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게임의 룰 자체가 바뀌면 7·4전대가 예정대로 열리지 못할 수도 있다.
○ 21만명 선거인단 논란
전국위의 재의결 없이 전대가 열리면 당헌의 일부 조항을 놓고 당원들끼리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 옛 당헌에는 대표와 최고위원을 선거인단이 아닌 대의원단이 선출한다고 돼 있다. 한나라당은 대의원단이나 선거인단이 사실상 같은 용어라고 주장하지만 법원의 판단이 필요한 대목이다.
개정된 당헌의 제27조 1항에는 ‘대표최고위원은 대표최고위원 및 최고위원 선출을 위한 선거인단이 실시한 선거에서 최다 득표한 자로 선출한다’고 규정했고, 한나라당은 이 조항에 근거해 선거인단을 21만여 명으로 늘렸다. 하지만 개정 전 당헌에는 ‘대표최고위원은 전당대회 대의원단이 실시한 선거와 여론조사에서 최다 득표한 자로 선출한다’로 돼 있고 전당대회 대의원단은 당규에 따라 1만여 명으로 정해져 있다.
하지만 일부에선 “당규보다 상위에 있는 당헌의 의결사항이 백지화된 마당에 당규 개정이 유효할 수 있겠느냐”고 지적한다. 만약 법원에 의해 선거인단 투표의 효력마저 정지되면 한나라당은 대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사실 전국위의 ‘의결 파행’을 강하게 문제 삼는 친이계 인사들도 법원의 이날 결정에 적잖게 당황하고 있다. 이번 소송을 낸 결정적 이유가 여론조사 반영을 철회하기 위해서인데, 정작 법원은 이 부분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선거인단 확대를 위한 당헌 조항의 효력이 정지되면서 논란이 엉뚱한 곳으로 확산된 것이다.
○ 의원들 자조-한탄
법원의 결정에 한나라당은 벌집을 쑤신 듯 술렁였다. 당 법률지원단은 이날 오후 4시 긴급 소집됐다. 황우여 원내대표와 법률지원단장인 여상규 의원, 이번 사건의 소송대리인인 김모 변호사 등은 별도의 회의를 열어 대책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황 원내대표는 “어떻게 대처했기에 이 지경이 됐느냐”며 한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 한나라당은 예정대로 전대를 치르기 위해 항고를 내기로 했다. 이두아 원내대변인은 “전국위를 다시 열어 재의결하면 전대를 치르는 데 문제가 없지만 이와 별개로 예상되는 법적 논란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항고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또 전국위를 재소집해 ‘정상적인’ 의결과정을 거치면 항고 시 법원이 효력정지를 계속 유지할 필요가 없다고 판결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 법조인 출신 한나라당 의원은 “효력정치 가처분신청 소식을 듣고 창피해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한편 청와대도 발칵 뒤집힌 분위기다. 이번 사태는 한나라당 내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청와대를 포함한 여권 전체의 총체적 난맥상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의 국정 운영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한 관계자는 “자칫 후보 중 1명이라도 무효를 주장하고 나서면 전대 자체가 난장판이 된다. 집권 여당의 꼴이 뭐가 되겠느냐”고 말했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