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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카미야의 東京小考]피폭국가 일본의 원전과 脫원전

입력 | 2011-06-30 03:00:00


와카미야 요시부미 아사히신문 주필

내가 코흘리개 시절 우리 집이 쓰는 전기는 고작 전등 라디오 선풍기 정도였다. 모친은 세탁물을 큰 대야에 넣어 손수 빨았고 냉장고라고 해봤자 매일 큰 얼음덩어리를 갈아 넣어야 하는 상자가 고작이었다. 청소도구는 빗자루와 먼지떨이였고 요리에 전자레인지를 쓴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이 모든 게 1950년대 초반의 풍경이다.

이윽고 TV가 등장했고 세탁과 청소는 전기가 대신 해주는 세상이 됐다. 언제부턴가 에어컨도 생필품이 됐고 이제는 PC나 DVD플레이어가 없는 집은 찾아보기조차 힘들다. 최근 반세기 동안 우리의 일상은 혁명적으로 변했다.

이에 따라 전력소비량도 기하급수로 늘었다. 전기제품만 전력을 먹어치우는 게 아니다. 이런 제품을 대량생산하기 위해 막대한 전력이 필요하다. 수력이나 화력발전만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전력 생산을 가능케 한 게 원자력이다.

일본 국가예산에서 처음으로 원전 개발비용이 추가된 것은 패전 후 9년 만인 1954년. 이후 총리가 된 나카소네 야스히로 씨 등 원전 추진론자들이 강하게 밀어붙인 결과였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피해의 아픈 기억이 채 가시기도 전이었다. 일부 과학자가 강하게 저항하기도 했다. 하지만 1955년 원자력기본법이 성립됐고 이를 신호로 일본의 원전정책은 본격화됐다.

원폭의 비극, 원자력에 희망 걸어

세계에서 유일한 피폭국이 이처럼 서둘러 원전사업에 착수한 것이 이상한 일이지만 실은 일본 국민도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환영했다. 미국의 원폭 투하는 일본 국민으로 하여금 압도적인 과학의 힘의 격차를 깨닫게 했다. 기세 꺾인 일본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면 최첨단 과학기술인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서 뒤처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만화 ‘철완 아톰’(한국명 ‘우주소년 아톰’)도 이 무렵에 태어났다. 하늘을 날며 악당을 쳐부수는 소년 로봇의 100만 마력 에너지는 다름 아닌 원자력이었다. 아톰이라는 말 자체가 원자라는 의미이고 아톰의 귀여운 여동생은 ‘우란’(우라늄의 일본식 표기·한국에서는 ‘아롱’으로 소개됐다)이었다. 이 만화가 당시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은 것은 원자력에 대한 희망이 그만큼 컸기 때문일 게다.

만화뿐만이 아니다. 1957년 8월 이바라키 현 도카이 촌에 있는 원자력연구소의 실험원자로가 가동을 시작했을 때 일본 국민이 맛본 감격이 지금도 생생하다. 일본의 미래에 희망이 비치는 기분이었다.

이후 1970년대 들어 원전이 하나씩 완성됐다. 주민 반대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지만 이 무렵 세계를 경악시킨 오일쇼크는 원전 건설에 박차를 가하게 했다. 자원이 부족한 국가에 원전은 절실했지만 실은 이게 큰 갈림길이었다. 일본처럼 석유를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하는 덴마크는 오일쇼크를 계기로 풍력발전에 주력해 전력생산의 30%를 자연에너지로 조달한다.

반면 체르노빌 원전 사고에도 아랑곳없이 원전 의존정책을 바꾸지 않은 일본은 자연에너지 비중이 9%에 불과할 정도로 크게 뒤처져 있다. 오히려 최근까지만 해도 원전이 지구온난화를 막는 클린에너지로 각광을 받았다.

바로 이때 터진 것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였다.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이어 ‘후쿠시마’가 비극의 땅으로 세계사에 이름을 남기게 됐다. 원전은 이제 커다란 전환점에 직면했다.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30km 이내에 살고 있던 주민 가운데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피폭자도 8명이나 된다. 이 중 한 사람은 “원자폭탄은 한 번에 ‘펑’ 하고 터졌지만 원전의 방사성 물질은 조금씩 새어 나온다. 소리도 냄새도 없어 더 무섭다”고 토로했다. 이제 원전이라면 질색이라고 여기기 시작한 사람은 비단 피폭자만이 아니다. 일본 내에는 탈(脫)원전의 기운이 퍼져가고 있다.

후쿠시마의 비극, 脫원전 계기로

시민운동가 출신인 간 나오토 총리도 정신이 번쩍 든 모양이다. 대지진과 지진해일(쓰나미)의 위험성이 큰 시즈오카 현의 하마오카 원전 가동을 중지시켰고 지난달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에서는 “2020년대 들어 조속한 시기에 자연에너지 비율을 20%로 올리겠다” “1000만 가구 옥상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겠다”며 결의를 보였다. 간 총리는 이후 국내 정쟁에 휘말려 조기 사임을 발표할 수밖에 없게 됐지만 탈원전의 분위기를 만들어보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 버티고 있다.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처럼 신에너지에서 비즈니스 기회를 찾는 움직임이 나오는 것은 기대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원전을 포기하면 경제도 생활도 성립될 수 없다”는 전력업계 등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 원전을 포기하든 아니든 전기를 공기처럼 생각하고 써온 우리들의 라이프스타일이 바뀌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절전의 여름, 일본인은 이마의 땀을 훔쳐가며 에너지에 대해 고민하게 될 것이다.

와카미야 요시부미 아사히신문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