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대륙 횡단하며 추모기금 30만달러 모아”
“오전 6시 25분에 미셸이 전화를 했어요. 아침은 먹었는지, 점심은 어떻게 할 건지 걱정했어요. 그게 마지막 통화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28일 펜타곤 메모리얼 입구에서 기자와 만난 그는 “아내의 좋은 기억만 남아 있다”며 “미셸은 나의 친구이자 애인이었다”고 말했다.
처남을 시켜 두 아이를 급히 학교에서 데려왔다. 아이들에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사실대로 얘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기자에게 “당신도 아이를 둔 아버지냐”고 물은 뒤 “아이들에게 엄마가 죽었다고 얘기하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일은 없을 것”이라고 고개를 떨궜다.
당장 사고 현장으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당시 펜타곤 출입은 통제됐다. 사흘 뒤에야 현장에 갈 수 있었다.
워싱턴 인근 메릴랜드에 사는 그는 테러 후 2주 만에 다시 비행기 조종석에 앉았다. 그는 “내가 일하지 않고 있으면 테러리스트가 이기는 것이고 아내도 그것을 바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비행하면서 테러로 흉물이 된 펜타곤과 뉴욕의 ‘그라운드 제로’ 모습을 공중에서 지켜봤다.
2006년 퇴직하기 직전 마지막 비행은 서부 캘리포니아가 종착지였다.
자전거 횡단을 하면서 9·11 희생자를 돕기 위한 추모기금을 30만 달러 모았다. 이후 그는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펜타곤 메모리얼 펀드를 주도하면서 희생자와 유가족을 돕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하이덴버거 씨는 “희생자 184명의 영혼이 쉬고 있는 펜타곤 메모리얼은 단순한 추모 장소가 아니다”라며 “이곳이 테러리스트들의 공격 대상이었다는 것을 젊은 세대들이 너무 빨리 잊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워싱턴=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