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 세법개정안 마련키로
정부 여당이 30일 대기업 오너 일가의 편법적인 ‘부의 대물림’을 막기 위해 상속·증여세법 개정안을 정기국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일부 대기업이 총수 자녀의 지분이 많은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고 주식가치를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세금 없이 부를 상속하는 관행에 제동을 건 것이다.
한나라당은 이날 당정 협의를 연 뒤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 및 계열사들의 소모성자재 구매대행(MRO) 사업 확장에 대한 대응 방안을 발표했다.
여기엔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편법 상속에 대한 과세 △내부거래 공시제도 강화 △대기업 계열 MRO의 무분별한 사업 확장 억제 △중소 MRO 업체의 경쟁력 강화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정부 여당은 우선 대기업이 계열사를 집중 지원해 부를 대물림할 경우 상속·증여세를 부과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로 했다. 기획재정부가 구체적인 과세 방안을 마련하는 대로 8월에 상속·증여세법 개정안에 반영한다는 것이다.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가 결국 총수 자녀들이 대주주로 있는 계열사의 주식가치 상승으로 나타나는 만큼 현행 상속·증여세법을 고치면 과세할 수 있다는 게 정부 여당의 설명이다. 주식가치 증가분이나 영업권 증가분에서 내부거래 비중만큼 과세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특히 비상장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줘 기업을 키운 뒤 상장해 막대한 차익을 챙기는 신종 ‘세(稅)테크’에 대해서도 과세할 방침이다. 김성식 정책위부의장은 “한나라당은 편법적 상장 차익에도 과세해야 한다고 했고 정부는 신중하되 실효성 있는 방안을 마련해 세법 개정안을 제출하겠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 총수 자녀 계열사 주식가치 오르면 증가분서 내부거래 비중만큼 과세 ▼
아울러 정부 여당은 대기업 일가의 거래를 투명하게 하기 위해 ‘내부거래 공시제도’를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계열사 간 내부거래를 할 경우 의무적으로 공시해야 하는 대상을 확대했다. 현재는 동일인(그룹 총수)과 친족 지분이 30% 이상인 계열사만 내부거래 내용을 밝히면 되지만 이를 20% 이상으로 기준을 낮추겠다는 것으로, 내부거래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에 공시해야 하는 기업은 217개사에서 245개사로 늘어나게 된다. 한나라당은 공시 대상을 추가로 더 늘리는 방안도 정부에 요청했다.
공시 횟수도 연간 한 차례에서 분기별 한 차례로 늘렸다. 공시 내용도 단가 품목 물량 등 구체적으로 기재해야 한다. 또 공정위가 1년에 한 차례씩 대기업 내부거래 현황을 심층 분석해 발표하도록 했다.
하지만 자율적 시장 감시인 공시제도가 실효성이 있느냐는 지적도 나왔다. 김 부의장은 “반(反)시장적으로 규제를 자꾸 만들기보다 시장의 감시를 강화하도록 했다”면서도 “‘공시제도’라고 이름은 붙였지만 당이 제안한 ‘신고제도’와 절충한 형태로 신고제에 준하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정부 여당은 이날 대기업 계열 MRO의 사업 확장으로 경영 악화가 우려되는 중소 MRO 업체 보호책도 내놓았다. 대기업 MRO의 영업 범위에 대해 조정을 신청할 수 있는 ‘사업조정제도’가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중소기업중앙회에 ‘대·중소기업협력지원센터’를 설치하기로 했다. 중소 상공인들로 구성된 단체들이 대기업에 비해 조직력이나 협상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사업조정을 대행해주겠다는 것이다. 이 밖에 대기업이 중소업체와 함께 외국 시장에 진출하도록 독려하고 중소 MRO 업체가 공동 참여하는 ‘중소기업 공동 온라인몰’을 구축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당초 MRO를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하려는 당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MRO 업체가 다루는 품목마다 성격이 달라 일괄적으로 대기업 진출을 막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그 대신 동반성장위원회가 MRO 사업 전반에 걸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기로 했다.
이날 한나라당은 대책 발표가 정치권의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 정책을 비판하고 나선 재계에 대한 ‘일종의 괘씸죄’나 ‘재벌 때리기’ 차원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주영 정책위의장은 “공정하지 않은 방식을 통한 부의 축적 및 승계는 공정사회를 지향하고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을 촉진하려는 현 정권의 정책방향에 배치돼 대응 방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