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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브리드 슈퍼컴’의 대공습

입력 | 2011-07-01 03:00:00

연산은 기본, 복잡한 CG-3D애니 미세한 움직임 계산도 척척




《빠른 속도 달리던 자동차 두 대가 큰 충돌을 일으키더니 갑자기 로봇으로 변한다.로봇의 웅장한 격투에 도시 곳곳에서 폭발이 일어나고 연기와 파편이 날린다. 최근 개봉한 영화 ‘트랜스포머3’의 화려한 영상은 순식간에 지나가지만 충돌의 중량감, 날리는 연기와 파편의 속도와 방향은 치밀한 물리·수학적 계산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최대한 현실 속 장면처럼 연출하기 위해서다.》

‘트랜스포머3’처럼 현란한 특수효과를 선보이는 할리우드 영화 속 컴퓨터그래픽(CG)은 영상제작에 특화된 ‘하이브리드 슈퍼컴퓨터’로 제작한다. 오른쪽 작은 사진은 미국 로스앤젤레스 남캘리포니아대 영화예술학교와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 캘리포니아통신정보기술연구소의 하이브리드 슈퍼컴퓨터. CJ E&M 제공·전동혁 동아사이언스 기자 jermes@donga.com

캘리포니아통신정보기술연구소의 가상 스튜디오. 전동혁 동아사이언스 기자 jermes@donga.com

이처럼 정밀하게 계산된 컴퓨터그래픽(CG)이나 3차원(3D) 애니메이션을 만들 때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제작 시간이다. 거대한 자동차부터 미세한 입자의 움직임을 일일이 계산해 1분 정도 영상으로 만들려면 고성능 컴퓨터로도 수십 시간이 걸린다. 계산이 잘못돼 영상을 수정해야 하면 작업을 또 반복해야 한다. 하지만 할리우드 영화인 트랜스포머3나 아바타 등을 보면 영화 대부분에 CG를 거리낌 없이 사용한다. ‘믿는 구석’인 ‘하이브리드 슈퍼컴퓨터’가 있기 때문이다.

○ 창작은 ‘사람’, 계산은 ‘슈퍼컴퓨터’

지난달 23일(현지 시간) 방문한 미국 로스앤젤레스 남캘리포니아대(USC) 영화예술학교는 매년 수십 명의 전문 영화 인력을 배출한다. 리처드 와인버그 교수는 “‘드림웍스’나 ‘픽사’ 같은 대형 영화사는 슈퍼컴퓨터를 활용한 영화제작 시설과 장비를 사용한다”며 “이곳에서도 같은 장비를 사용하기 때문에 졸업생이 바로 현장에서 일할 수 있는 것이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와인버그 교수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핵심을 보여주겠다’며 안내한 곳은 한여름에도 16도 정도로 서늘하게 유지되고 있는 기계실이다. 기계실에 있는 슈퍼컴퓨터에는 수많은 그래픽카드와 초고속 광섬유 케이블이 꽂혀 있었다. 아날로그 영상을 디지털 영상으로 바꿀 수 있는 편집기도 설치됐고 만든 영상을 바로 확인할 수 있는 듀얼 모니터도 달렸다. 와인버그 교수는 이를 “하이브리드 슈퍼컴퓨터”라고 불렀다.

하이브리드 슈퍼컴퓨터는 자료(data)를 빨리 처리하기 위해 개발된 슈퍼컴퓨터에 특수 용도로 개발된 시제품(하드웨어)을 장착한 컴퓨터다. USC 영화예술학교에서는 영상 제작에 특화시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와인버그 교수는 “이 슈퍼컴퓨터는 USC 영화예술학교의 모든 영상편집기와 CG 제작 컴퓨터와 초고속망으로 연결돼 있다”며 “어디서 편집을 하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영상화(렌더링)’ 작업은 슈퍼컴과 연동해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창작 능력을 가진 사람은 어떤 영상을 만들고 수정할지 고민할 뿐 남은 렌더링 시간을 쳐다보며 시간을 낭비하는 일은 최소화하겠다는 의미다.

○ 배우-가상배경 대화 슈퍼컴 등장

하이브리드 슈퍼컴퓨터로 미래형 스튜디오를 구축하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UCSD)의 캘리포니아통신정보기술연구소(Calit2)에서는 가상의 배우와 배경을 현실에 등장시키는 기술을 연구한다. 기존 영화제작 방식처럼 배우의 연기를 촬영한 뒤 CG로 장면을 그려 넣는 대신 특수 스튜디오에 가상 배경을 만들고 가상 배우와 함께 실제 배우가 연기하는 것을 촬영하는 방식이다.

토드 마골리스 기술감독은 “실제 연기자의 반응에 따라 가상 배우와 배경이 반응하면 실제 배우의 표정과 행동을 더욱 자연스레 끌어낼 수 있고 멋진 장소를 찾아 멀리 이동하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했다. 현재 Calit2의 스튜디오에서는 실제 연기자가 다른 공간에 있는 연기자와 가상 배경에서 자연스레 대화를 주고받는 장면을 제작할 수 있다.

Calit2에서는 고성능 컴퓨터 18대를 결합해 ‘클러스터 슈퍼컴퓨터’를 구축해 사용한다. 17대는 각각 고성능 그래픽 카드를 2개씩 장착해 고유의 소프트웨어를 구동하고 나머지 1대가 17대를 제어하는 방식이다. 이 또한 슈퍼컴퓨터와 그래픽카드, 그래픽 소프트웨어가 결합된 하이브리드 슈퍼컴퓨터로 1초에 10GB(기가바이트)를 처리할 수 있다.

Cailt2를 방문한 강지훈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슈퍼컴퓨팅본부 선임연구원은 “슈퍼컴퓨터 선진국은 이미 용도에 맞게 ‘맞춤형 하이브리드 슈퍼컴퓨터’를 제작해 사용하는 사실에 놀랐다”며 “국내에서도 슈퍼컴퓨터가 사용될 수 있는 다양한 분야를 발굴해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LA·샌디에이고=전동혁 동아사이언스 기자 jerme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