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희 논설위원
소킨, “빠르지만 깊이 없다”며 탈퇴
내가 페이스북 세상에 동참하게 된 계기는 현실적인 것이었다. 유학 중인 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일을 하고 다니는지 궁금해서 페이스북에 가입했다. 딸아이의 소소한 일상을 들여다보는 재미도 있었다. 페이스북을 통해 직장동료의 뜻밖의 모습을 보기도 하고 소식이 끊겼던 동창과 연락이 닿기도 했다. 어느덧 컴퓨터를 켜자마자 페이스북에 접속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중독을 살짝 걱정하기도 했지만 새로운 네트워크 세상에 대한 찬탄이 앞섰던 게 사실이다.
그날도 여느 날처럼 딸의 담벼락에 들어가려는데 접속이 되지 않았다. 그때 날아든 문자! “친구 삭제했으니 이젠 들어오지 마.” 페이스북에서 시간을 너무 많이 보내는 것 같아 공부 좀 열심히 하라고 두어 번 댓글을 달았더니 나를 삭제시켰단다. 그렇지 않아도 페이스북 관리가 힘들게 느껴지던 참이었다. 엄선한다고 해왔지만 친구가 100명을 넘어서려 하고 있었다. 친구 신청을 해온 사람 가운데 누구는 거절하고 누구는 받아들이면 거절당한 쪽에서 섭섭하다는 소리가 나올까봐 은근히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신기하던 글 사진도 식상해졌다. 무엇보다 페이스북에서 머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신문 읽고 책 뒤적이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문화인류학자인 로빈 던바 옥스퍼드대 교수는 침팬지 등 영장류의 사교성을 연구하다가 대뇌의 신피질이 클수록 교류하는 친구가 많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는 1992년 인간의 신피질 크기를 고려할 때 최소한 1년에 한 번 이상 연락하는 친분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의 수는 150명이라고 발표했다. 오프라인에서도 이럴진대 얼굴 한 번 마주친 적 없는 SNS 속 친구들과는 더할 것이다. ‘친구’라지만 클릭 한 번이면 삭제 목록에 들어가 버리는 관계다.
클릭 한 번에 버리는 ‘친구’도 친구?
어느 국회의원이 휴대전화번호부 명단이 수천 명이라고 자랑했다는데 그중의 몇 명과 진정한 관계를 맺고 있을지 궁금하다. 기술의 진보가 소통의 방식을 바꾸고 있지만 소통 도구의 진화와 소통의 질이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트위터 마니아로 유명한 한 재벌 2세를 팔로잉하던 친구는 “(남다른 메시지를 줄 것 같던) 재벌 2세의 끊임없는 개새끼(애견) 얘기에 실망했다”며 팔로잉을 그만두었다. 관계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면 관계에도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 ‘만인의 친구는 누구의 친구도 아니다’라는 말도 있지만 SNS 시대일수록 절실한 것은 관계의 확장이 아니라 관계의 깊이 같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