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봉 패션디자이너
무한도전을 촬영하던 시기는 디자이너로서 한글을 패션에 접목하는 새로운 도전 앞에 서있던 시기였다. 파리에서는 1년에 두 차례씩 수천 개 브랜드가 참여하는 패션 전시박람회가 열린다. 그중 3만 명 이상이 관람하는 전시가 후즈넥스트(WHO'S NEXT)다. 그 전시장 중앙에서 한-프랑스 수교 120주년을 기념해 한글을 테마로 패션 전시를 했다. 프랑스인 전시기획자와 나는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독창적인 한글을 프린트해 외국 디자이너 40여 명에게 나눠준 후 그들에게 작품을 의뢰했다. 한글이 프린트된 외국 디자이너들의 옷이 하나 둘씩 전시장에 걸릴 때의 감동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세계 패션계에 한글을 소개한 것은 2006년이지만 처음 패션디자이너라는 길에 ‘도전’할 때부터 나는 우리 문화를 늘 염두에 두고 작업했다. 1985년 데뷔 땐 백의민족을 주제로 했고, 다음 해 미국 전시에서는 모시를 사용했다. 1991년에는 전통 매듭과 대바구니 조직을 모티브로 가져왔다.
파리에서 패션쇼를 열 때 초대장에 까치호랑이 이미지를 쓴 적도 있다. 세계 패션계에서 큰 영향력을 가진 영국 데일리텔레그래프의 힐러리 알렉산더 기자는 인터뷰를 요청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런 호랑이 그림은 처음 본다. 이 그림 때문에 당신의 쇼를 찾아왔다.”
우리 문화를 담은 패션을 해외에 소개할 때마다 놀라는 외국인들을 보며 기쁘기보다는 우리 문화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속상하고 오기 또한 생겨났다. 소나무, 민화, 산수화와 한글을 현대적으로 패션에 접목하는 일에 도전하게 된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싶다.
6월 베를린에서 에스모드 심사를 마치고 파리에 들렀을 때 K-POP의 열기와 반응을 경험할 수 있었다. 한국 가수들의 노래를 따라 부르고, 한글로 응원 팻말을 써서 한국 가수들을 따라다니는 유럽 젊은이들을 보면서 외환위기 때 파리 진출을 하면서 겪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파리에서 전시할 때 주최 측에서 전시장 건물에 북한의 인공기를 달아놓아 사무실로 달려가 항의했던 일, 경제 위기를 타개해 보려고 디자이너들이 전시 부스에서 옷 한 벌 팔기 위해 고생하던 일 등등.
요즘은 해외 톱스타들이 한국 디자이너의 옷을 입는 일이 드물지 않다. ‘데스티니 차일드’의 전 멤버인 캘리 롤랜드는 전미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는 슈퍼볼 공연에서 내가 디자인한 옷을 입었다. 최근엔 김연아 선수가 산수화를 표현한 드레스를 입고 아리랑에 맞춰 공연했다. 외국인에겐 낯선 우리 문화를 내놓는 것이 대단한 용기와 자신감이 필요한 일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나는 또 다른 의미에서 김연아 선수에게 박수를 보냈다.
1990년대 해외로 진출했던 진태옥 이신우 이영희 같은 선배님들부터 외환위기 때 해외 비즈니스 전선에 뛰어들었던 나와 박춘무 우영미 등 2세대 디자이너들, 그리고 그 뒤를 이은 정욱준 송지오까지 한국 디자이너들은 한국 패션의 세계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도전의식-열정 불어넣어주기 때문
최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도 한국 패션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확인하고 다양한 지원을 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 기관이나 관리들은 단기적 성과나 화려한 이벤트, 수출 실적으로 패션의 가치를 매기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 영국 등 세계 패션을 선도하는 나라를 보자. 이들은 경제적 문화적 대국이다. 나는 패션이 그 나라 문화와 경제 수준을 보여주는 척도라고 생각한다. 패션은 산업이지만 산업을 넘어 예술과 문화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 문화의 일부로서 우리 패션에 대한 국민과 정부, 지자체의 지속적인 관심을 부탁드린다.
한글을 포함한 우리 문화는 나에게 도전 의식과 열정을 가져다주었기에 나는 늘 세종대왕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는 언제나 세종대왕이 가졌을 무한도전의 열정을 떠올려 본다. 세계를 감동시키기 위한 한국 패션의 무한도전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이상봉 패션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