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권당 중심에 선 홍준표
4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열린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홍준표 신임 대표(가운데)가 당기를 흔들고 있다. 왼쪽은 2위로 당선된 유승민 최고위원.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1996년 정치를 시작한 이래 만년 비주류였던 홍준표 대표는 4일 전당대회에서 재수 끝에 집권여당의 당권을 거머쥐는 데 성공했다. 중심에 서게 된 것이다. 당선 소감을 말할 땐 찢어지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부터 줄곧 변방에 서성였던 장면을 떠올린 듯 그의 눈시울이 잠시 젖어들었다. 홍 대표는 지난해 7월 전당대회에서 친이(친이명박)계 조직이 대거 지원한 안상수 전 대표와 경쟁해 박빙으로 2위에 그쳤다. 이때 그는 “바람은 조직을 이기지 못했다. 앞으로 조직을 좀 하겠다”라고 말한 뒤 1년을 와신상담했다.
○ 변방에서 중심으로
홍 대표는 어린시절 시장에서 ‘달비’(부녀자의 머리카락) 장사를 하던 어머니와 일당 800원을 받고 조선소 앞 백사장에 적재된 철근 쇳조각을 지키던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홍 대표는 “어릴 때 고리채를 갚지 못해 내 어머니가 사채업자에게 길거리에서 머리채를 끌려 다니는 모습을 보고 지금도 대부업체 이자율을 낮추자고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타 검사’가 됐을 때는 잠시 ‘주류’가 되는 듯했다. 서울지검 검사로 재직 중이던 1993년 ‘슬롯머신 사건’ 수사를 맡아 당시 권력 실세이던 박철언 전 의원을 구속해 명성을 얻었다. 인기 TV드라마의 모델이 되면서 ‘모래시계 검사’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정권에 부담이 되는 수사를 서슴지 않고 계속하자 정권은 그를 밖으로 몰아냈다.
홍 대표는 4선 국회의원을 지내면서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는 여당을 향한 ‘저격수’로, 2007년 대선 때는 이명박 대통령의 BBK 의혹에 대한 대응을 총괄지휘하며 정권 창출에 성공했다. 정권 초 당 원내대표를 맡아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던 법안들을 대부분 대화와 타협으로 처리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자기주장이 강한 그를 중용하진 않았다.
당 최고위원직에 있었던 지난 1년 동안도 여권의 야당 역할을 자임하면서 서슴없이 쓴소리를 했다. 이런 강한 성격 탓에 “좌충우돌 홍두깨” “내부 총질을 한다” “통제가 안 되는 사람”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번 전대에선 “이명박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할 사람”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 “계파 타파 개혁 첫 과제”
홍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당 개혁의 첫 번째 과제로 ‘계파 타파’를 꼽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취임 이후 첫 과제는.
“계파 타파다. 나는 계파가 없다. 내년 총선까지만이라도 계파 없이 당을 운영하고 대선후보 경선 때는 계파 진영으로 돌아가 일하도록 하겠다.”
―서민으로 들어가겠다고 했는데 가장 먼저 추진할 서민정책은…
“당 서민특위에서 추진하던 택시대책, 주거대책을 추진하고 대부업체 이자율 인하도 해야 한다. 당 대표와 서민특위 위원장을 겸직하겠다.”
―박근혜 전 대표 등 대선주자를 보호하겠다고 했는데….
“박 전 대표뿐만 아니라 한나라당의 유력 대선주자들이 상처 입지 않도록 보호하겠다고 했다. 그것은 절대명제다. 내가 유력 대선주자를 방어해야 하는 한나라당의 유일한 장수다.”
―계파갈등 해소 방안으로서 공천개혁은…
“공천은 내년 설 전에 하면 되는 것이다. 공천은 상향식 공천, 개혁공천, 이기는 공천 등 3대 원칙에 따라 하겠다.”
△경남 창녕(57) △영남고 △고려대 법대 행정학과 △울산·광주·서울지검 검사 △국회 환경노동위원장 △한나라당 원내대표, 최고위원 △15(서울 송파갑), 16, 17, 18(서울 동대문을)대 의원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