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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김갑식]일지암과 문화재 지킴이

입력 | 2011-07-06 03:00:00


김갑식 문화부 차장

“뱁새는 나무 한 가지(枝)에만 살아도 마음이 편하다.”

전남 해남군 두륜산 일지암(一枝庵). 본사인 대흥사에서 40여 분의 산행 끝에 최근 이곳을 3년 만에 찾았다. 잠시 걸터앉으면 세상의 시름을 잊게 했던 일지암의 소박한 툇마루와 바람 길이 시원하게 뚫려 있어 땀을 식히기에 제격이던 자우홍련사도 보였다.

우리나라에 차 문화를 일으킨 초의선사(草衣禪師·1786∼1866)는 한시에서 이름을 딴 이 암자에서 40년간 머물렀다. 선사는 작은 뱁새도 가지 두 개를 욕심내지 않고 하나에 만족할 줄 안다는 지족(知足)의 경지를 찾았으리라.

약 200년 전에 일지암은 당대의 두 거인, 추사 김정희(1786∼1856)와 초의선사를 주인공으로 하는 드라마의 배경이었다. 1840년 추사는 제주 유배지로 향하면서 일지암을 찾아 선사와 찻잔을 나눴다. 초의선사의 차 맛에 흠뻑 빠진 추사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차를 빨리 보내 달라는 편지를 자주 쓰기도 했다.

이곳에서 뜻밖의 손님을 만났다. 문화재 지킴이 활동에 나선 아모레퍼시픽 직원 일행이었다. 젊은 직원 서너 명과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박창용 부장이 땀을 흘리며 암자 주변을 정리하고 있었다.

일지암은 겉보기에는 옛 모습 그대로지만 5월까지 새 단장을 했다. 지난해 장맛비로 초가 지붕과 목재가 썩고 구들이 변형돼 보수가 불가피하던 차에 이 회사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5000여만 원을 들여 짚과 목재, 구들을 바꾸고 처마선도 이전보다 길게 빼 빗물이 들이치는 것을 막았다.

일지암과 이 회사의 인연은 1979년으로 거슬러간다. 화장품으로 잘 알려진 이 회사는 당시 매우 생소했던 녹차 사업에 뛰어들었다.

“차 사업을 하고 싶소. 하지만 이것은 당장 돈이 벌리는 사업은 아니오. 문화사업이오. 성공하면 (기업의) 이미지가 달라질 거요.”

박 부장이 전하는 창업주인 고(故) 서성환 회장(1923∼2003)의 비장한 출사표다. 지금은 수 십만 원이 넘는 중국산 푸얼차가 팔리고, 녹차가 일상화됐지만 그때는 그랬다. 우리의 우수한 차 문화가 사실상 끊긴 것을 안타깝게 여긴 서 회장은 “화장품 회사가 무슨 녹차냐”라는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이 회사는 우리 차 문화의 상징인 일지암 복원에 참여했다. 이 회사 직원들은 토요일마다 일지암과 인근 강진군의 다산초당, 제주의 추사 김정희 유배지에서 문화재 지킴이 활동을 벌이고 있다. 자원자가 밀려 있을 정도로 직원들의 호응도 크다.

일지암을 포함한 대흥사 템플스테이에는 매년 5000∼6000여 명이 참가하고 있다. 이곳은 일지암의 상징성을 살려 차를 따고 만드는 과정을 프로그램에 포함시켜 다른 템플스테이와의 차별화에 성공했다. 3년 사이 7차례나 참가한 이들도 있다는 암주 무인 스님의 설명이다.

무모하다던 차 사업은 어떻게 됐을까. 1997년 처음 흑자를 달성했다. 20년 가깝게 수익이 나지 않았지만 서 회장의 집념 때문에 투자가 지속됐다. 지난해에는 프리미엄 티백과 잎차 제품의 판매 확대로 매출이 37%나 증가했다. 개관 10주년을 맞은 ‘제주 오설록 티 뮤지엄’은 연간 100만 명이 방문하는 관광명소로 자리 잡았다.

중요한 것은 일회적인 재정 지원이 아니라 한결같은 관심과 애정이다. 우리 것의 가치를 알고 지키려는 기업의 뚝심 있는 또 다른 성공 드라마를 기대해 본다.

김갑식 문화부 차장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