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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유호열]EU 대북 식량 지원, 우리는…

입력 | 2011-07-06 03:00:00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북한은 올해 초 대대적으로 식량지원을 호소했다. 이에 대표적인 대북 식량지원 국제기구인 세계식량계획(WFP)은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및 유니세프와 공동으로 2월 21일부터 3월 11일까지 조사단을 북한에 파견해 식량실태를 조사했다. 이를 근거로 3월 24일 ‘북한 식량실태 평가 특별보고서’를 발표하고 각국 정부와 기관에 북한에 대한 긴급 식량지원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WFP “北 올해 식량 110만t 부족”

WFP 등 공동조사단은 2010년 북한의 식량 생산량을 425만 t 정도로 추정하고 북한 전체 인구의 최소 소요량 535만 t보다 110만 t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당시 북한 내 9개 도 40여 개 시군을 방문조사한 뒤 취약계층 610만 명(350만 명 우선 지원)에 대한 43만 t의 긴급 식량 지원을 제안했다.

WFP의 조사 결과에 대해 통일부 등 국내 관련기관의 평가나 입장은 유보적이었고 미국 등 외국 정부 역시 신중한 편이었다. 무엇보다 북한 식량실태에 대한 조사가 좀 더 현실적이고 객관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지적과 북한에 대한 식량지원은 빈곤국에 대한 식량 원조 및 농업개발 지원 등 더 정책적인 차원의 문제가 내재돼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또한 북한 당국의 식량 수입 의지와 정책, 역량 등 관련 경제정책과도 밀접히 연관된 점이 대북 식량지원을 주저하게 만든 이유였다. 동시에 대남 군사 도발 및 핵과 미사일 개발 등으로 남한 및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고 있는 북한이 이에 대해 사과 등 책임 있는 조치를 하거나 비핵화에 진정성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도 고려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우리와 국제사회가 대북 식량지원에 소극적인 시점에서 4일 유럽연합(EU)은 북한에 대한 긴급 구호식량 지원을 3년 만에 재개하기로 결정했다. EU 집행위원회는 6월 6∼17일 독자적으로 식량평가단을 파견했다. 이들의 실사를 통해 북한의 식량사정이 매우 악화됐으며 특히 북한 북부와 동부지역이 심각한 상황임을 확인했다. 따라서 EU는 서방세계로서는 처음으로 이 지역 주민 65만 명에게 시급히 구호식량을 보내기 위해 1000만 유로(약 155억 원)의 지원금을 책정했다. EU 집행위 관계자와 WFP 요원들이 식량의 전달과정을 철저히 감시하겠다고 밝혔다.

EU의 대북 식량지원은 WFP의 권고안에 비하면 규모는 10분의 1 수준이며, 분배 투명성은 대폭 강화된 수준에서 진행될 것이다. 이는 특정 지역 및 계층의 피해와 고통을 단기간 해소한다는 점에서 긴급구호 차원의 지원이며 이 식량이 다른 목적으로 전용될 경우 즉각 지원을 중단할 것을 강조했다. 북한 당국의 적극적인 수용의지를 반영한 결과로서 과거에 비해 진일보한 방식이다.

미국 역시 WFP의 조사결과 발표 이후 독자적으로 북한의 식량실태를 조사해 식량지원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다만 지원의 규모와 방식, 그리고 분배 투명성 제고 방안 및 대북지원의 정치적 효과 등을 다각도로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北 주민의 고통도 고려해야

국내 대북지원단체들은 그동안 정부의 대북 식량지원 억제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대한 식량지원의 시급함과 필요성을 꾸준히 제기해왔다. 식량지원이야말로 인도주의적 사안이며 동포애를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등 도발을 일삼고 연일 대남 비방 협박의 강도를 높이고 있는 북한에 대해 감정이 없을 수 없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EU의 대북 식량지원 결정을 주목해야 한다. 한반도 비핵화, 평화와 안전, 그리고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북한 정권의 태도 변화와 북한 주민의 대남 인식 변화가 선행 조건이라면 우리도 최소한 EU 수준의 식량지원을 그에 합당한 방식으로 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