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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프리즘/홍권희]국제 곡물시장 한중일 삼국지

입력 | 2011-07-07 03:00:00


홍권희 논설위원

주요 국제 원자재값 폭등세가 최근 주춤해졌지만 언제든 다시 오를 수 있다. 국제 원당(原糖)값은 따로 놀아 지난달에만 30% 가까이 올랐다. 브라질 상파울루설탕조합의 생산량 감소 전망에 여러 악재들이 뒤엉켜 나돈 때문이다. 투기세력이 물량 부족에 애를 태우는 수요자를 ‘봉’으로 만들고 나서야 시장이 일시 안정될 것이란 농담 섞인 전망이 나왔다. 우리도 봉이 될 수 있다.

쌀 직불금을 밀 옥수수 생산에

세계 곡물시장이 6년째 뜨겁다. 2006년 작황부진으로 곡물값이 껑충 뛴 이후 다국적기업의 생산 가공 교역 인프라 투자가 급증했다. 투기성 자금도 가세했다. 2008년 곡물값이 폭등할 때 “식량거래의 70∼80%가 사재기”라는 고발도 있었다. 정태원 CJ제일제당 부장은 “2006년 이후 원맥 대두 원당값의 월간 변동 폭은 이전의 2∼4배로 커졌고 2009년 세계 주요 곡물업체의 매출액도 2004년의 2∼4배로 불어났다”고 분석했다.

한국은 주식인 쌀 자급률이 104.6%, 평균 곡물자급률(사료 포함)은 26.7%여서 ‘웬만큼 자급한다’는 착시를 유발한다. 쌀을 제외하면 5%에 불과하다. 콩은 8.7%이고 밀과 옥수수는 각각 0.8%로 사실상 전량 수입한다. 수요만큼 밀을 확보하지 못하거나 비싼 값에 들여오고 빵 라면값이 덩달아 뛰면 한국에서도 적잖게 난리가 날 것이다.

정부는 “식량안보에 문제없다”고 주장하다가 최근 가격 폭등에 놀라 태도를 바꿨다. 이명박 대통령은 4월 “곡물자급률을 50%까지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주 정부가 제시한 목표는 2015년 30%, 2020년 32%였다. 넘쳐나는 쌀 생산 농민의 소득보전에 한해 1조4000억 원의 직불금을 나눠주느니 밀과 옥수수 생산 기반 확충에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

곡물을 확보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국제시장에서 돈을 주고 사오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카길 등 4대 곡물 메이저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이들의 횡포에 시달릴 여지가 크다. 이미 61%로 높아진 메이저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공기업인 농수산물유통공사(aT)를 통해 독자적인 채널 구축에 나섰지만 걸음마 수준이다. 4월 미국 시카고에 곡물컴퍼니 사무소를 차린 aT는 내년까지 미국에서 11개의 엘리베이터(곡물저장유통시설)를 확보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일본은 40년 전부터 종합상사들을 앞세워 브라질 등에 농장을 확보하고 현지 생산에 나섰다. 미국에 수십 개의 엘리베이터를 확보하는 등 곡물조달시스템도 구축했다. 도은진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본은 우리와 달리 일찌감치 글로벌 시각을 갖고 대비했다”고 지적한다. 지금 일본의 곡물유통은 세계 준(準)메이저급 대접을 받는다. 이는 한국의 목표이기도 하다. 김용택 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 기업들도 해외생산에 적극적이지만 성공 사례는 드물다”고 말했다.

耕者用田으로 대기업 참여시켜야

일본은 2009년 농지법을 개정해 농민만 농지를 소유할 수 있다는 경자유전(耕者有田) 대신에 농사짓는 사람이 농지를 이용한다는 경자용전(耕者用田) 원칙을 채택했다. 이후 유통업체 증권회사 등 대기업들의 농업 참여가 줄을 잇고 있다. 농산물시장 개방에 소극적인 일본이 일반기업에 농업을 개방한 것을 우리도 배워야 한다.

오랜 곡물 수출국이면서 최근 콩 옥수수 수입을 시작한 중국은 광물 에너지처럼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지의 농장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 최대의 곡물거래업체 코프코는 그제 남미 최대 곡물기업인 아르헨티나의 벙기를 누르고 호주의 원당업체 툴리의 인수자로 선정됐다. 돈 걱정 없는 국영기업 코프코가 국제시장 진출 속도를 높이면 다국적기업들도 긴장할 것이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