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택 논설위원
확인해 보니 역시 사실이 아니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05년부터 2009년까지 5년 동안 자살한 대학생은 한 해 평균 240명이다. 2009년에 자살한 249명의 사유를 보면 정신(과)적 문제가 78명으로 가장 많았고 남녀문제(53명)와 가정문제(30명)가 뒤를 이었다. 등록금이 포함됐다고 할 수 있는 경제문제가 동기였던 자살자는 16명뿐이었다. 김 교수에게 발언의 근거를 묻는 e메일을 기자 신분을 밝히지 않고 보냈다. 김 교수가 “등록금 문제는 학부모와 학생의 생존권 및 교육권을 위협하는 이슈다”라는 자신의 주장을 강조하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거나 과장한 것은 아닐까 의심도 했다.
이틀 뒤 김 교수는 잘못을 인정하며 인터넷에 있는 기사 내용을 수정하겠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그는 잘못된 발언의 근거가 반값 등록금 이슈를 증폭시킨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의 5월 25일 라디오 연설이라고 알려줬다. 김 교수는 다시 사흘 뒤에 ‘문제의 대담기사 인터넷판을 수정했다. 잘못된 부분을 지적해줘서 고맙다’고 알려왔다. 20년 동안 대학에서 강의한 교수가 현실을 그렇게 몰랐다는 걸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나는 그의 성의에 감동했다.
황 대표에게도 발언의 근거와 잘못을 수정할 용의가 있는지를 묻는 e메일을 기자 신분을 밝히지 않고 보냈다. 하지만 나흘이 지나도록 한나라당 인터넷 홈페이지의 ‘당 대표 라디오 연설’ 코너에는 허위사실이 포함된 연설문이 그대로 방치돼 있다. 황 대표의 답변도 물론 없었다.
이 일은 사소한 에피소드로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겐 ‘무능하고 무성의한 웰빙정당’이라는 한나라당에 대한 인상을 강화시켜 준 경험이었다. 대학교수와 정치인을 단순 비교하는 건 무리일 수도 있다. 남의 잘못 때문이라고 변명할 여지가 있는 김 교수와, 남 탓을 하기 힘든 황 대표의 처지도 이해는 간다. 황 대표의 잘못은 연설문을 작성한 보좌진의 잘못을 알아채지 못한 것일 뿐일지도 모르겠다.
황 대표가 내게 답변하거나 사과할 필요는 없다. 다만 소통을 중시하는 정치인이라면 잘못된 논거를 바로잡는 성의는 보여야 하지 않을까. 소중하지 않은 목숨이 어디 있겠나. 그러나 등록금 때문에 자살하는 대학생이 한 달에 1명 정도인 것과 연간 200∼300명이나 되는 건 전혀 차원이 달라지는 문제일 것이다. 그 차이를 모르거나 무시한다면 좋은 정치인 소리는 듣기 어려울 것 같다.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