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민은 “나도 장준하처럼 하고 싶은 말을 속에 꾹꾹 담아 놓고 사는 편”이라며 “내가 준하를 닮아가는건지, 준하가 나를 닮은 건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
MBC ‘내 마음이 들리니’의 슬픈 악역 장준하(어린 시절 이름 봉마루)의 인생 역정이다.
배역에 숨을 불어넣은 건 10년차 배우 남궁민(33)이다. 물기 어린 처연한 눈빛으로 하마터면 냉혈한으로 끝났을 배역에 온기를 줬다.
준하는 학창 시절 전교 1등이었지만, 지적장애인 아빠 봉영규(정보석)와 청각장애인 새엄마 때문에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곤 했다. 그래서 새엄마의 딸 우리(황정음)에게도 짜증만 냈다. 다시 만난 우리는 그에겐 ‘사랑’이 됐다.
“친동생 같은 차동주(김재원)에게 ‘우리를 좋아해’라고 고백해요. 동주와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데. 마루가 ‘돌아이’거나 그만큼 짝사랑에 빠졌다는 거죠. 한번은 우리에게 ‘자고 가라’고 해요. 애를 어떻게 해보려는 게 아니고, 그저 오래 보고 싶어서요. 이 대사를 어떡하나 고민하다 그냥 ‘자고 가, (버스는) 위험해서 안 돼’로 했어요. 여자 스태프들이 굉장히 좋아했죠.”
‘다크 마루’는 팬들이 지어준 별명이다. 양어머니 태현숙(이혜영)을 무조건 따르던 착한 준하가 실상을 알고 상처 입은 야수처럼 포효하자, 이런 별명이 붙었다.
인기 덕분에 연예인으로선 이례적으로 MBC, YTN 뉴스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했다. 당시 그는 “극중 김재원과 ‘남남 커플’로 침대 위에서 장난치는 신이 많다”고 ‘자폭’ 발언을 하기도 했다. 두 사람이 유독 다정한 형제로 나오기 때문이다.
지금은 연기파 배우로 불리지만, 그는 “연기에 대한 열등감이 있다”고 말했다. 2002년 SBS 시트콤 ‘대박가족’으로 데뷔해 영화 ‘비열한 거리’, KBS2 ‘부자의 탄생’ 등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왔지만 이렇다 할 주목은 받지 못했기 때문.
“지방 촬영 땐 회식에도 안 나오고 펜션 구석에서 대본을 외워요. 예민할 때는 잠꼬대로 대본을 중얼거리고, 메이크업도 안 하고 촬영장에 가는 꿈을 꿔요. 힘들지만 대본이 걸레가 될 때까지 보고, 감독님에게 자주 묻는 수밖에 없죠.”
그는 이번 작품을 자신을 보여주는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10일 드라마가 종영하면 가능한 한 쉬지 않고 차기작에 들어가겠다고 말했다. 특히 로맨틱 코미디물 드라마 대본을 눈여겨보고 있다고. 그는 “사랑의 상처는 다른 사람을 만나야 지워지듯, 장준하를 떨치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역할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제 나이도 있고, 결혼하는 친구들 보면 부럽죠. 하지만, 우선 일에 집중하려고 해요. 제가 배우로선 키가 작아요. 재원 씨도 키가 184㎝로 훤칠하고 잘생겼어요. 어머니는 저더러 미안하다고 하지만, 어쩔 수 없죠. 부족한 부분을 메우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할 겁니다.”
원수연 동아닷컴 기자 i2overyo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