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자-교육학자 10명 ‘사건으로 한국사회 읽기’ 펴내
“‘신정아 사건’에 대한 커다란 사회적 반향은 그만큼 한국 사회가 차별적이고 위선적인 학벌 중시 구조에 빠져 있다는 증거다.”
사회마다 고질적으로 반복되는 사건들이 있으며 이는 그 사회가 지닌 모순의 표출일 가능성이 높다. 사회학자와 교육학자 10명이 이에 착안해 한국 사회를 특징짓는 사건들에 대해 공동 연구를 진행한 뒤 그 결과물을 ‘사건으로 한국사회 읽기’(이학사)로 펴냈다.
김왕배 연세대 교수는 ‘자살-죽음 충동의 해체 사회’에서 전직 대통령의 자살은 정치적 후진성, 집단 자살은 무한경쟁으로 인한 아노미적 상황, 노인 자살은 가족주의적 연고주의와 경로사상 전통의 해체를 원인으로 꼽았다. 그러면서도 김 교수는 이 3가지 자살의 발생구조에 “1960년대 이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취한 목표 달성주의적인 저돌적 산업화”라는 공통의 인자가 있다고 분석했다.
권위주의적 개발독재 시대의 정치구도가 민주화 이후에도 잔존하고 있으며, 사회 전반에 걸쳐 타자를 인정하고 배려하는 규범이 상실된 결과가 다양한 양태의 자살로 나타난다는 설명이다.
정미량 한국학중앙연구원 현대한국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학력 위조 사건과 학벌 사회’에서 학력 위조가 1950, 60년대에는 드물었지만 1970, 80년대 한국 경제가 성장하면서 확산됐으며 1990, 2000년대에 만연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2007년 7월 발생한 신정아 사건의 경우 한국 사회의 차별적이고 위선적인 학벌 중시 구조 때문에 그만큼 사회적 반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정 선임연구원은 학력 위조 문제를 해결하려면 학위 검증 시스템의 엄밀화보다는 사회에 내재돼 있는 학벌 중시 구조 타파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 병폐인 집단 따돌림에 대해 구난희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학교에서 일어난 우발적 사건이 아니라 사회와 사회의 대응방식과 긴밀하게 연관돼 있는 문제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구 교수는 ‘집단 따돌림의 구조와 양상’에서 “학교나 지역교육청의 대증적 대처만으로는 부족하다”며 “공공적 정의성을 확산시킴으로써 공적 영역의 대응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연구 과정을 총괄한 정미량 선임연구원은 “사건과 사회구조를 연결해 보려는 첫 시도였다”며 “사건사를 통한 연구가 확대 심화돼 시민 교육과 역사 이해의 자료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