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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2/작은 정원 큰 행복]아파트서 벼-밀 길러 행복을 수확해 보세요

입력 | 2011-07-09 03:00:00


일러스트레이션-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기자가 어렸을 때의 일입니다. 밥을 먹다 상에 흘리면 아버지께서 “농부가 쌀을 만드는 데 얼마나 걸리는 줄 아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정답은 ‘1년’이었지요. 실제로 논에서 벼를 키워내는 데에는 6개월 정도가 걸리지만, 봄부터 가을을 ‘상징적 의미’로 1년이라 하신 것이었습니다. 저는 상에 떨어진 밥알을 다시 주워 입에 넣곤 했습니다.

○ 화분에서 벼 기르기

요즘 초중학생 자녀를 둔 부모님들 중 실제로 농사를 지어본 분들은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벼가 자라는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꽤 강하리라 생각합니다. 살아있는 자연 공부가 되고, 곡식의 소중함을 깨우쳐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쌀은 우리나라 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작물입니다. 쌀 소비가 많이 줄었지만 아직도 많은 한국인이 ‘밥을 먹어야 힘이 난다’고 생각합니다. 영국의 인류학자 조너선 패리는 “인간은 그 사람이 먹는 음식 그 자체다. 음식을 먹음으로써 육체가 만들어지며, 음식은 정신까지 규정한다”고 말했습니다.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대부분의 국가에서 쌀을 기초로 역사와 문화, 경제가 형성됐고 또 유지되고 있습니다. (‘쌀을 말한다’·농민신문사·2005년)

발아 1일차

오늘은 이렇게 우리와 연관이 깊은 벼를 집에서 기를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볼까 합니다. 벼를 키우는 것은 생각보다 복잡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철이 좀 늦어 아쉽긴 하지만 아파트 발코니는 노지보다 온도가 높아 벼 이삭이 맺힐 가능성이 있습니다. 벼농사의 첫걸음은 씨앗 준비입니다.

1 씨앗 준비 도시에 사는 분들이 가장 고민하는 부분입니다.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도 볍씨만 파는 곳은 찾기 힘듭니다. 하지만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볍씨 대신 현미를 이용하면 되니까요. 현미는 벼 낱알에서 왕겨만 살짝 벗겨낸 쌀입니다. 나중에 싹이 되는 눈이 그대로 붙어있습니다. 그래서 영양가가 높습니다.

 싹 틔우기

2 싹 틔우기 저녁에 현미를 종이컵에 넣은 후 물을 붓고 하룻밤 불립니다. 다음 날 아침 물을 따라버린 후 종이컵에 랩을 씌우세요. 랩은 고무줄로 감아 고정시키면 됩니다. 불린 볍씨를 2, 3일간 따뜻한 곳에 놓아두면 싹이 틉니다. 처음엔 뿌리가, 그 다음엔 잎이 나옵니다. 저는 발아를 촉진하기 위해 따뜻한 바람이 나오는 노트북 환풍구에 컵을 놓아두었습니다. 단, 수시로 비닐 랩을 열어 습기가 마르지 않았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습기 유지를 위해 가끔씩 물로 현미를 씻어주세요. 씻은 후에는 물을 따라버리시고요. 그러지 않으면 더운 날씨에 씨앗이 상할 수 있습니다.

회분에 심기

3 화분에 심기 싹이 튼 현미를 조심스럽게 화분에 심어주세요. 구멍은 씨앗 높이의 2, 3배 정도로 파시면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벼는 물을 아주 많이 필요로 하는 식물입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집에서 벼를 기를 때는 바닥이 막힌 그릇(스티로폼 박스 등)을 씁니다. 이 방법이 간편하긴 하지만, 미관상 부족한 점이 있고 자칫하면 통기가 안돼 새싹이 썩어버릴 수 있습니다.

이런 단점을 극복하게 해주는 게 바로 ‘저면관수’입니다. 일반 화분을 그대로 쓰고, 화분 받침에 물을 채워 수분을 공급하는 방식이지요. 물을 충분히 담을 수 있는 플라스틱 대야 같은 것을 받침으로 쓰면 더 좋겠지요. 저면관수는 물관리가 의외로 편리합니다.

위의 과정이 부담되시는 분들은 모든 것이 다 갖춰져 있는 세트상품을 사셔도 됩니다. 경기도농업기술원이 개발한 ‘벼 재배 화분 세트’를 인터넷 쇼핑몰(www.greenpot.kr)에서 팔고 있더군요. 바닥이 망처럼 된 저면관수 전용 화분과 일체형으로 된 화분 받침이 들어있습니다.

■ Tip 벼 키우기

벼는 해를 많이 봐야 잘 자랍니다. 벼의 원산지는 비가 많이 오고 날씨가 따뜻한 곳입니다(상자기사 참조). 아파트에선 최대한 볕이 잘 드는 베란다에 두셔야 합니다. 그리고 꽃이 필 때는 바람이 잘 통하게 해 주세요. 벼와 밀, 보리 같은 곡물은 바람이 꽃가루받이를 해 주는 풍매화(風媒花)입니다.

○ 집에서 밀 기르기

말이 나온 김에 밀 키우기에 대해서도 설명을 드릴까 합니다. 밀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는 곡물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예전에는 보리와 함께 밀을 많이 키웠습니다. 조선시대에는 밀이 귀해 밀가루를 ‘진가루’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최근 들어 국내의 밀 재배 면적이 다시 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밀은 가을에 파종해 초여름에 수확합니다. 농약을 뿌릴 필요가 없어 건강식품으로 인기가 있습니다.

한반도 토종 앉은뱅이밀은 세계 농업혁명의 열쇠가 된 밀 품종 ‘소노라’의 조상이 됐습니다. 미국의 육종학자 노먼 볼로그 박사는 낱알이 많이 달리면 밀 포기가 쓰러지는 문제를 밀의 키를 줄임으로써 해결했습니다. 앉은뱅이밀의 유전자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요. 그는 인도와 파키스탄을 기아에서 구해낸 공로로 1970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밀을 키우는 것은 벼 키우기보다 훨씬 간단합니다. 밀은 그냥 흙 위에 뿌려만 두어도 싹이 잘 납니다(물론 잘 심어주는 것이 더 좋습니다). 우리나라에선 보통 가을에 씨를 뿌리지만 봄(2월 말∼3월 초)에 파종을 해도 됩니다. 안철환 귀농운동본부 텃밭보급소장은 “여름철은 밀의 휴면기간이라 파종을 안 하는 게 낫다”고 하시더군요. 조금 기다렸다 10월 중순(중부)이나 말(남부)에 밀 키우기를 시작하면 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밀 씨앗은 볍씨와 마찬가지로 식용으로 파는 통밀을 사시면 됩니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1kg에 3000원 내외에 팝니다. 씨 뿌리고 남은 통밀은 볶아서 간식으로 드시거나, 통밀차를 끓여 드시면 좋습니다. 통밀은(현미도 마찬가지지만) 섬유질이 풍부하고 비타민과 무기질도 많이 함유하고 있습니다.

저희 집에서는 화분에 심었던 밀을 지난달 초에 수확했습니다. 일요일 저녁에 둘째 아이의 문구용 가위로 이삭을 잘랐습니다. 아이와 함께 거실에 신문지를 깔고 손으로 ‘타작’을 했지요. 아이는 무척 신기해하고 좋아했습니다. 집 안에서 키운 것이고 쭉정이가 많아 수확량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정말 즐겁고 행복한 순간이었습니다. 그 순간이 멈추지 않고 계속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행복은 소박하고 작은 것에서 온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 Tip 밀 키우기

식물은 동물과 달리 환경에 따라 크기가 달라집니다. 거의 모든 식물은 작은 화분에 심으면 작게 자랍니다. 분재와 비슷하지요. 통밀을 작은 화분에 심으면 귀여운 ‘미니어처 밀’이 자란답니다. 키가 작아도 이삭이 달립니다. 벼도 마찬가지입니다.  
▼ 중국 윈난성에선 벼가 산에서 잡초처럼 자라 ▼


벼의 원산지로는 아프리카, 인도 북부지방, 베트남 메콩 삼각주 등이 거론됩니다. 그렇지만 최근에는 중국 윈난(雲南) 성이 벼의 원산지란 주장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벼는 중국 남부로부터 바다를 거쳐 들어왔거나, 중국 중북부 지방을 거쳐 육로로 들어온 것으로 추정됩니다.

흥미롭게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는 우리나라에서 발굴됐습니다. 충북대 박물관이 1997∼2001년 충북 청원군 옥산면 소로리 일대에서 발견한 ‘소로리 볍씨’는 무려 1만4000여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는 중국 후난(湖南) 성 볍씨보다 2000여 년 앞선 것입니다. 유전자 분석 결과 소로리 볍씨는 대부분 지금 우리나라에서 재배되는 자포니카(낱알이 짧고 둥글며 차지고 기름기가 많음) 계통임이 밝혀졌습니다.

벼는 전 세계적으로 22∼24개 종이 있습니다. 이 중 재배벼는 전 세계적으로 분포하는 아시아종과 서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 밭벼로 재배하는 아프리카종 등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쌀을 말한다’·농민신문사·2005년) 나머지는 야생이며 아시아는 물론이고 아프리카와 중앙아메리카, 남아메리카의 열대와 아열대 지역에 널리 퍼져 있지요. 얼마 전 TV에서 보니 중국 윈난 성에선 야생 벼가 산에서 잡초처럼 자라더군요.

한편 우리말 벼는 인도어 ‘브리히’에서, 나락은 ‘니바라’에서 왔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 주장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벼농사는 인도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볼 수도 있겠지요. 쌀의 어원이 인도어 ‘사리’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문권모 기자 mikem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