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오후 경기 정부과천청사 1층 로비. 백발의 한 신사가 김동연 기획재정부 예산실장의 배웅을 받았습니다. 300조 원 넘는 예산을 주무르며 관가에서 ‘갑(甲) 중의 갑’으로 불리는 김 실장이 백발의 신사 앞에서 군기가 바짝 든 열중쉬어 자세로 경청하는 모습이 특이했습니다.
백발의 신사는 다름 아닌 이석채 KT 회장이었습니다. 마침 이날은 재정부 예산실이 내년도 각 부처 예산안 요구 현황을 발표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습니다. 이 회장이 왜 뜬금없이 과천에 나타났을까요?
이 회장은 김 실장에게 “예산은 단순히 돈을 쓰는 게 아니라 국가정책 집행의 근간”이라며 “예산실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포퓰리즘에 흔들리면 나라의 미래는 없다”고 당부했다고 합니다. 언뜻 선배의 잔소리 같아 보이지만 알고 보면 30년 예산공무원 경험에서 우러나온 진심어린 당부였습니다.
이 회장이 과천을 들른 날, 재정부는 각 부처가 요구한 예산 총규모가 332조6000억 원에 이른다고 발표했습니다. 반값 등록금, 무상급식, 취득세 보전 등 나랏돈 씀씀이가 그 어느 때보다 커지는 상황입니다. 이 회장의 고언대로 예산실이 금고지기 역할을 충실히 해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