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하 여행전문기자
그는 부자였다. 아니 지금도 부자다. 재산이 500만 달러‘뿐’이니. 누군가가 물었다. “어떻게 해야 백만장자가 되나요.” 대답은 이랬다. “억만장자부터 되세요.” 1984년 전 재산 5억 달러를 자신이 세운 자선단체(애틀랜틱재단)에 몽땅 기부한 직후다.
그런데 4년 후 포브스가 선정한 미국 부자 400인 중 23위에 올랐다. 추정재산은 13억 달러. 루퍼트 머독, 데이비드 록펠러보다 많았다. 분명 오보였다. 그런데 어떻게…. ‘익명 기부’ 때문이었다. ‘익명’은 그의 기부원칙. 그러나 그것도 1997년에 깨진다. 뉴욕타임스가 15년간 기부행위를 1면 머리기사로 낱낱이 보도한 것이다. ‘그는 6억 달러를 기부했고 아무도 그걸 몰랐다’는 제목 아래.
‘수의(壽衣)에는 주머니가 없다.’ 아일랜드의 금언(金言)이다. 동시에 가난한 아일랜드 이민자 아들, 척 피니의 좌우명이기도 하다. 그에겐 또 다른 원칙이 있다. ‘생전기부(Giving while living)’다. 기한은 2016년. 그는 특별하다. 버는 건 좋아해도 소유하는 건 좋아하지 않는다. 돈 자랑도 않는다. 기부도 사업처럼 한다. 남에게 힘이 되는 곳만 골라 효과적으로 쓰는 방식으로.
앤드루 카네기는 그의 롤모델이다. 카네기는 ‘부(Wealth)’라는 책에서 이렇게 설파했다. ‘부자는 과시나 허영을 멀리하며 검소하고 소박한 삶의 모범을 보여야 할 의무를 갖는다’고. 또 ‘대학이나 도서관처럼 꿈을 가진 사람들이 딛고 오를 사다리를 제공하는 것’에 기부의 가치를 두었다. 그걸 척 피니가 따랐다.
비행기는 이코노미클래스만 타고 시계도 15달러짜리만 차는 억만장자. 기부도 대학에 집중했다. 최대 수혜자는 모교인 코넬대. 하지만 가장 크게 기여한 곳은 모국 아일랜드다. 1980년대에는 대학 7곳에, 1998년엔 연구능력향상기금으로 1억2500만 달러를 기부했다. 그런데 조건부였다. 아일랜드정부가 똑같은 액수로 지원한다는. 이게 아일랜드를 정보기술(IT) 강국으로 만드는 밑거름이 됐다. 유럽의 빈국 아일랜드를 ‘켈트의 호랑이’로 등극시킨 ‘사다리’였다.
그에겐 재산 대물림도 없다. 각자 수백만 달러를 나눠주는 데 그쳤다. 돈을 물려주면 자녀 스스로 삶의 방향을 결정하지 못하고 자신의 강요를 따르게 된다는 판단에서다. ‘그 돈이 자녀에게 저주가 될 수 있다’는 카네기의 생각과 같았다.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