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혁백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군주들의 감정적 결정에 의해 일어난 종교전쟁과 영토전쟁으로 고통을 받았던 유럽의 국민들은 이익을 추구하는 상인들에 의해 감정이 순화되고 평화가 찾아올 것이라고 믿었다. 17, 18세기의 자본주의 옹호론은 충동적이고 파괴적인 악한 감정에 의해 사회가 파멸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자본주의가 등장하고 확산되었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는 ‘사악하고 파괴적인 감정’을 이익 추구에만 몰두하는 자본가들의 ‘점잖고 온화한 감정’으로 제어함으로써 평화, 협력, 시민적 질서, 그리고 경제적 풍요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개인들이 자신의 이기적 이익을 추구하면 전체 사회의 공익이 극대화된다는 스미스의 주장에는 ‘구성의 오류’가 있었다. 개인들이 자신의 이익만을 열심히 추구하면 집단적으로는 사회적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은 1930년대 대공황, 20세기 양대 세계대전,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등으로 분명해졌다. 자본주의가 항구적 평화와 풍요를 보장한다는 주장은 허구이며 자본주의는 항상 자기 혁신과 개혁을 통해 존속하고 발전해 왔다는 주장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과거를 기억하지 않는 자들은 그것을 다시 반복하도록 저주받는다”는 산타냐의 경구를 기억해야 한다.
나는 자본가의 승리와 장기 지속은 그들이 사회와 타자를 위해 쌓은 헌신적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최근 방문했던 벨기에 플랑드르 지방의 브루게는 최초의 자본주의 거점 도시다. 브루게가 거점 자유상업도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지리적 위치 외에 베기나지 같은 부르주아지들의 자선적 봉사행위에 기인하였다. 당시 십자군전쟁과 지역분쟁으로 시집 못간 처녀들과 사별여성이 많았는데 브루게의 부유한 상인들은 자신들의 딸들을 베기나지로 보내 비교적 자유롭게 육아, 보육, 양로 등의 봉사활동을 하게 하였다. 초기 자본주의를 주도한 상인들도 부르주아 질서의 정당성을 얻기 위해 이렇게 ‘남을 위해 보살피는’ 행위를 열심히 하였다. 그것은 타인을 위한 봉사활동이었지만 자신의 이익, 그리고 자유상업도시 브루게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는 점에서 스미스의 명제와 모순되지 않는다.
이러한 주장은 오늘날 글로벌 자본주의의 두 거장인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의 ‘창조적 자본주의론’에서도 발견된다. 2008년 다보스포럼에서 게이츠는 오늘날 놀라운 정보기술(IT)의 기적은 그것을 살 수 있는 자들에게만 혜택을 가져다주는데, 왜냐하면 시장은 필요가 아니라 수요에만 대응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자본주의가 존속하고 번영하려면 가난한 자들도 구매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 현재의 자본주의체제는 수정되어야 하며 그 방향은 이윤 추구와 이기적 이익과 ‘타인을 위한 보살핌(caring for others)’을 동시에 추구하게 하는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게이츠의 창조적 자본주의다. 21세기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두 거장이 ‘사적 개인의 이기적 이윤 극대화 추구’라는 자본주의의 기본 가정의 수정을 요하는 주장을 편 데 대해 많은 비판이 뒤따랐지만 2008년 말 발발한 글로벌 금융위기와 그 여진이 계속되는 현재 그들의 주장이 타당하다는 지지자가 급증하고 있다.
최근 보수적인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서 이익공유제, 동반성장, 공정사회, 사회복지 확대 등과 같은 따뜻한 자본주의를 향한 개혁정책을 내놓고 있는데, 한국의 자본가를 대표하는 기업단체들에서 이를 내년 양대 선거를 겨냥한 포퓰리즘으로 정면 비판하는 과거에 없던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물론 선거를 앞둔 인기영합적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보수정당이 자신의 정체성과 배치되고 지지층의 이반을 불러올 개혁을 이야기할 때는 핵심 지지세력인 경제단체들도 다시 한 번 그 의미를 되새겨보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 기업들도 이타적 행동 나서야
자본주의의 장기 지속의 배경에는 역사상 처음으로 경제적 지배계급이 정치권력을 직접 장악하지 않고 국민에게 돌려준 데 있다. 그래서 인기영합적인 정치인들이 표를 위해 가난한 국민들을 보살피는 정책을 펴면서 자본가들의 상품을 더 많이 소비할 수 있는 수가 늘어나고 경제는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중세의 기사와는 달리 냉혹하게 이윤만을 극대화하는 기업인들은 국민들로부터 찬사는 받을지 모르나 사랑받지는 못한다”는 슘페터의 경구를 생각하면서 좀 더 따뜻한 기업인이 많이 나오면 한국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동반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임혁백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