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부인이 사회적 어젠다를 설정하는 힘은 막강하다. 힐러리 클린턴 여사는 1992년 백악관 서관에 ‘대통령 부인실’을 마련하고 건강보험 개혁 프로젝트를 전담했다. 이때의 노력이 지난해 미국 건보개혁 성공의 밑거름이 됐다. 재클린 케네디 여사는 소수민족을 미국 사회에 통합시키는 이민법 제정에 큰 관심을 기울였다. 1974년 대통령 부인이 된 지 한 달 만에 유방절제 수술을 받았던 베티 포드 여사는 여성낙태 지지운동에 전력을 기울였다.
▷‘안방 권력’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했던 한국의 정치문화 속에서 우리나라 대통령 부인들의 사회적 활동은 잘 드러나지 않았다. 유아교육이나 결식아동 급식 등 복지 문제를 조용히 처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소곳하게 한 걸음 뒤에서 대통령을 보필하는 현모양처로 남는 것이 미덕이라는 인식이 우리나라 대통령 부인 문화에 작용하는 듯하다. 여성의 정치 참여문제를 연구해온 조은희 서울시 정무부시장은 “국민이 선출한 것은 대통령이지 대통령 부인은 아니지 않느냐는 과거 인식이 소극적인 대통령 부인상(像)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하태원 논설위원 triplet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