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화선, 김홍도’대본★★★ 음악★★★ 무용★★★ 연출★★★☆
‘화선, 김홍도’는 김홍도의 그림을 대형 스크린으로 불러들인 뒤 이를 사실적 연기와 춤사위로 풀어낸다. 단원의 풍속화 ‘씨름도’를 모사한 장면. 국립극장 제공
이 작품은 여러모로 기대를 모았다. ‘벽속의 요정’과 ‘열하일기만보’, ‘3월의 눈’으로 찰떡궁합을 과시한 배삼식 작가와 국립극단 예술감독 손진책 씨가 다시 호흡을 맞췄다. 여기에 국립극장 소속 국악관현악단, 무용단, 창극단 3단체가 역량을 결집했다. 2000년 발표된 ‘우루왕’ 이후 11년만의 총체극이다.
대본은 섬세하면서도 날렵했다. 두 명의 선비가 김홍도의 그림 속으로 들어가 김홍도를 찾아 나선다는 이야기 구조는 매월당의 전기(專奇)소설에서 따왔다. 그들이 나누는 대사는 연암 박지원과 그가 이끌던 백탑파의 문장부터 한문학에 정통했던 현대시인 김수영의 시 ‘사랑’을 넘나드는 위트가 넘친다.
하지만 한국을 대표할 ‘국가브랜드 공연’이란 타이틀 때문일까. 아니면 가무악(歌舞樂)을 하나로 녹여내는 총체극이란 형식 때문일까. 이 작품은 단원의 예술세계에 대해 새로운 통찰을 아무것도 제시하지 못한 채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한다.
이 작품에 분명 김홍도가 등장한다. 그것도 말년의 노화가로, 표암 강세황 아래서 그림을 배우는 화동(畵童)으로 변신을 거듭하면서…. 하지만 제작진이 정작 보여주고 싶어 하는 김홍도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그는 그냥 속세를 초탈한 신선, 그래서 감히 한마디를 더하거나 뺄 수 없는 존재로만 그려진다. 한마디로 그림뿐 아니라 세상만사 다 꿰고 있는 도사다. 그래서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화선(畵仙)이란 제목에 취해 정작 김홍도라는 인물의 형상화에는 실패한 것이다.
물론 달을 직접 그리지 않고도 달빛에 물든 구름만으로 달을 형상화하는 동양화의 홍운탁월(烘雲托月)이란 기법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기엔 작품 속 단원이나 그의 예술세계에 대한 통찰이 평면적이다. 단원의 화첩 속 기행을 마친 두 선비의 깨달음, ‘세상 같은 그림, 그림 같은 세상’은 단원의 그림뿐 아니라 이 세상 모든 그림에 적용할 수 있는 범용한 것이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i: 16일까지. 2만∼7만 원. 02-2280-41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