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리는 물통 보라, ‘유용성’이 핵심
《 기술의 발전이 무조건 사람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아니다. 적절한 기술과 콘셉트가 어우러질 때 삶의 질이 높아진다. 고도로 진화한 하이테크는 사람들에게 마법 같은 경험을 제공한다. 하지만 낮은 수준의 기술(로테크·Low-tech)이 높은 수준으로 사람을 배려하는 ‘하이 콘셉트(High-concept)’와 만나면 마법 같은 경험 대신 한결 친근하고 간편하며 생활 속에 파고드는 경험을 제공한다. 동아비즈니스리뷰(DBR) 85호(2011년 7월 15일자)는 ‘로테크 하이콘셉트’가 제공하는 다양한 가치를 여러 사례와 함께 흥미롭게 풀어냈다. 》
○ 기술에 종속된 삶
MIT 모빌리티랩과 여러 파트너가 만든 레버리지 프리덤 체어. 비포장도로가 많은 저개발국가의 환경을 고려한 휠체어로 바퀴를 굴리는 대신 손으로 레버를 밀고 당겨 앞으로 갈 수 있다. 메타트렌드미디어그룹 제공
그러나 기술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콘셉트다. 기술은 콘셉트를 구현하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데도 많은 사람은 새로운 기술을 제품에 추가하는 것이 경쟁력을 높이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엔지니어 중심적인 시각이다. 제품의 중심에 기술을 놓음으로써 사용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해질 수 있다. 사용자 중심, 콘셉트 중심의 제품 개발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기술보다 콘셉트를 중심으로 제품을 개발함으로써 사용자에게 더욱 사랑받는 제품을 만들 수 있다.
○ 마이너스 디자인
차나 커피를 한결 따뜻하게 유지해 주는 커피 줄리. 금속으로 된 커피콩 모양인 줄리를 찻잔에 넣으면 별도의 전원 없이 차의 따뜻함을 오래 유지할 수 있다.
로테크 하이콘셉트는 낮은 수준의 기술, 혹은 적정 기술을 활용한다. 따라서 지금까지 기술 발전에서 소외돼 왔던 저개발 국가나 아무런 인프라가 갖춰져 있지 않은 오지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쉽게 개발할 수 있다. 매사추세츠공대(MIT) 모빌리티랩과 파트너들은 비포장도로가 많은 저개발 국가에서 유용하게 쓸 수 있는 휠체어 디자인을 개발했다. 이 제품은 손으로 바퀴를 직접 굴리기 힘든 환경을 고려해 손으로 레버를 밀고 당겨 앞으로 갈 수 있게 만들어졌다. 바퀴와 구동부 등 대부분의 부품은 자전거 부품을 재활용했기 때문에 제작과 유지 보수가 매우 쉽다. 휠체어가 있어도 제대로 활용할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 레버리지 프리덤 체어는 새로운 자유를 주는 발이 된다.
○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한 기술
Q드럼을 이용해 물을 운송하고 있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모습. Q드럼은 가운데가 빈 드럼통 형태의 물통으로 가운데 구멍에 줄을 연결해 굴릴 수 있어 물통을 들고 오가는 수고를 줄인다.
별다른 운송수단이 없는 오지에서 쉽고 저렴하게 구할 수 있는 저밀도 폴리에틸렌 수지로 만들어진 Q드럼은 고액 투자가 필요 없고, 에너지 사용이 적으며, 누구나 쉽게 배워 쓸 수 있고, 현지 원재료를 씀으로써 로테크 하이콘셉트의 가치를 증명했다. 로테크 하이콘셉트는 기술과 휴머니즘의 중간에서 서로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한다.
기업들이 하이테크에만 집착하면 안 된다. 이제는 과거의 기술을 얼마나 잘 활용하고, 자연과 잘 어우러지는지가 더 중요한 시대다. 로테크 하이콘셉트는 여러모로 친환경과 맥을 같이한다. 자급자족, 저에너지 소비, 재활용 같은 키워드에도 잘 어울린다. 새로운 기술을 구현하기 위해 투자하는 비용과 노력을 아낄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다. 이전 세대의 기술을 활용함으로써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만드는 것. 바로 로테크 하이콘셉트의 가치다.
정리=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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