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中선 사라지고… 왜 한국과 베트남에서만 먹을까
동양에서 개고기를 먹은 역사는 오래됐다. 하지만 특별히 복날 먹은 것은 중국의 춘추시대 무렵부터다. 동국세시기에는 사마천의 사기를 인용해 기원전 676년, 진나라 덕공 2년에 복날이 되면 제사를 지내는 사당을 짓고 개를 잡아 벌레로 인한 피해인 충재(蟲災)를 막았다고 적었다. 사기의 원문에는 벌레를 막는다는 표현을 어고(禦蠱)라고 썼다.
주목할 부분은 사기 원본에는 벌레 충(蟲)자 대신 벌레 고(蠱)자를 썼다는 점이다. 둘 다 벌레라는 뜻이지만 사기의 ‘고’는 곤충이 아니라 배 속에 있는 벌레다. 그러니 기생충이나 세균에 의한 전염병을 막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소, 돼지, 닭, 양고기를 놔두고 굳이 개고기를 복날 음식으로 삼았던 까닭은 무엇일까.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 역귀 퇴치와 전염병 예방도 하나의 이유다. 또 개고기는 양기인 불(火)이고 복날은 음기인 금(金)이니 불로 쇠를 녹인다는 화극금(火克金)의 음양오행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개고기가 좋은 식품이라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춘추시대 월나라에서는 출산장려책으로 남자아이를 낳으면 술 두 병에 개고기를 지급하고, 여자아이를 낳으면 돼지고기를 지급했다. 돼지고기보다 개고기를 더 귀하게 여겼다는 증거다. 주례(周禮)에도 제왕이 먹는 여섯 가지 고기 중에 말, 소, 양, 돼지, 닭과 함께 개고기가 포함돼 있다. 고대에는 개가 고급 식용가축이었던 것이다.
이랬던 중국이 지금은 일반적으로 보신탕을 먹지 않는다. 일본에도 없고 태국 등 동남아에도 없으며 한국과 베트남에만 보신탕이 남아있다. 여기에도 이유가 있다. 일본은 중세부터 19세기 말까지 아예 육식을 금했다. 보신탕은 고사하고 소, 돼지도 먹지 않았다. 고기를 먹은 것이 20세기부터니 굳이 보신탕을 먹을 이유가 없다. 동남아 국가들은 종교적 이유가 크다.
중국에서 보신탕이 사라진 것은 6세기 무렵이다. 이 무렵의 농업서인 제민요술(齊民要術)에도 개고기는 보이지 않는다. 주례에 나오는 가축 중에서 개가 빠지는 대신 낙타와 오리가 들어갔다. 6세기는 중국에서 북방 유목민족이 세력을 떨쳤던 시기다.
반면 한국과 베트남은 계속 농경문화를 유지했다. 게다가 전통적으로 보신탕을 제물로 썼던 유교를 숭상했다. 보신탕을 꺼릴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