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지 소로스 소로스펀드 회장
EU를 구상한 사람들은 옛 소련의 위협에 처했던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과거 기억과 국가 간 통합으로 얻을 미래의 경제적 이익을 그려보면서 정치적 의지를 끌어냈다. 소련이 붕괴하자 독일 통일에 대한 희망과 비전으로 부풀었다.
독일은 자국의 통일이 유럽 통합이라는 큰 그림 아래 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를 위해 기꺼이 통일을 이행할 준비를 했다. 마스트리히트조약과 유로화 도입으로 유럽 통합은 절정에 이르렀다.
문제는 유로화가 예상치 못한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시장에서 통화 과잉이 자율적으로 조절될 수 있고 인위적인 조정은 공공 부문에만 필요하다고 여겼지만 판단 착오였다. 국가별 통화정책을 지나치게 신뢰했던 것도 과오였다. 금리가 낮은 국가에서 부동산 거품 현상이 생기는 등 문제가 발생했던 것이다. 더욱이 독일 통일이 이뤄진 후 유럽 통합의 주요 추진동력은 사라졌고 재정 위기로 오히려 유럽 국가 간 붕괴가 촉발됐다.
재정 위기를 겪은 유럽 국가들이 EU 공동의 신용이 아닌 자국의 신용 회복에 나서면서 전체 유럽 국가의 유대라는 것에 회의가 나타났다. 유로존은 부채에 허덕이며 침몰해가는 국가와 쾌속 항진하는 국가로 양분됐다. 독일 같은 유럽 내 채권국은 원조를 좌지우지할 수 있지만 채무국은 파산 상태로 치닫고 있다. EU 정치기구는 유럽 통합이라는 과제가 아니라 현 시점의 위기를 해결하는 것으로 역할이 바뀌었다. 결국 재정 문제가 불거진 현 시점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긴다면 유럽 통합에 반대하는 편에 서야 한다.
현재의 재정 위기에 대한 타개책이 있느냐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지금으로선 시간을 버는 수밖에 별다른 방법이 없는 듯하다. 그러나 시간을 벌면 벌수록 유럽 국가 간 양분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 재정적자 위기에 처한 그리스의 앞날이 불투명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제 그리스와 유로존은 ‘플랜 B’를 세워야 한다. 그리스는 디폴트(채무불이행)를 피하기 어렵고 포르투갈 같은 유럽의 다른 국가로 번질 수도 있기 때문에 유로존은 보호 조치가 필요하다. 유로본드와 예금보험을 유로존에 더욱 폭넓게 적용하는 등의 계획이 필요하다.
현 위기가 방어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바뀐다면 국가별 해결책이 아니라 전(全) 유럽적 해법을 찾아야 한다. 통합을 지향하는 유럽인은 자국 이익만을 지지하는 사람이나 통합에 반대하는 이들보다 분명히 수적으로 우세한, 침묵하는 다수이기 때문이다. ⓒProject Syndicate
조지 소로스 소로스펀드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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