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육상 첫발은 1896년 운동회… 맨상투 바람으로 300보 달렸다
1896년 5월 2일, 서울 동소문 밖 삼선평(서울 성북구 삼선교 부근) 너른 공터에선 외국어학교 분교인 영어학교 학생들의 화류회(운동회)가 열렸다. 관중은 난생 처음 듣도 보도 못한 경주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300보, 600보 달리기, 공 던지기, 대포알 던지기(투포환), 멀리뛰기, 높이뛰기 등 모든 경기가 신기하기만 했다. 그중에서도 달리기 출발이 압권이었다. 우선 심판은 비가 오지 않는데도 검은 우산을 받쳐 들었다. 그리고 출전 선수들에게 “제자리에 서옵시오”라고 정중하게 말했다. 오늘날로 치면 “On Your Marks(제자리에)!”인 셈이다. 선수 대부분이 양반 자제들이라 경어를 쓰지 않을 수 없었다. “Set(차렷)!” 과정은 생략됐다. 바로 출발신호가 떨어졌다. 심판이 우산을 아래로 잡아 내리는 것이 바로 출발신호였다. 선수들은 일제히 달려 나갔다.
영어학교 운동회는 구한말 하나의 거센 유행이 됐다. 1896년 5월 31일 훈련원(옛 동대문운동장 자리)에선 관립학교 연합운동회가 열렸다. 장안의 장동, 계동, 정동, 매동 소학교 학생 181명이 참가했다. 이듬해인 1897년 4월 2일 흥화문 밖 산 위에서는 경성학당 창립 1주년 기념 운동회가 열렸다. 300, 600, 1350보 경주와 대포알 던지기, 공 던지기, 멀리뛰기, 높이뛰기 등이 펼쳐졌다.
첫 운동회를 개최한 영어학교는 1897년 6월 16일 훈련원에서 대운동회를 열었다. 이날 대회는 정부 국무대신, 각국 외교관과 그들의 부인 등 내빈과 함께 관람객이 1000여 명에 달했다. 경기 종목은 300보 달리기(청년부, 소년부), 600, 1350보 달리기, 공 던지기, 대포알 던지기, 멀리뛰기, 높이뛰기, 2인3각, 당나귀 달리기, 줄다리기 등 총 12개 종목이었다. 달리기 선수들은 하나같이 맨상투 바람이었다.
각국 공사관 영사관의 외교관들과 그 부인들이 조선 군사의 호위를 받으며 가마를 타거나 직접 말을 몰고 입장했다. 개막나팔 소리가 울리면 영어학교 학생들은 총을 메고 행전(각반)을 찬 모습으로 손님들이 있는 대청까지 발맞춰 행진했다. 평소 학생들은 제식훈련을 받고 있었다. 경기는 학생대표가 큰 소리로 중앙대청의 손님들에게 개시를 알리면서 시작됐다.
입상자들에겐 은 회중시계, 시곗줄, 장갑, 은병, 주머니칼, 명함갑 등 값비싼 외국 제품들이 주어졌다. 대회를 주최한 영어학교와 영국공사관의 외국인들, 이들과 친분이 있던 조선인 개화파 인사들이 300원이나 되는 돈을 추렴해 중국 상하이까지 가서 사온 것이었다.
1898년 5월 28일에는 관립외국어학교 6개 분교 연합대운동회가 훈련원에서 열렸다. 참가 학교별로 복색이 달랐다. 요즘으로 치면 고유의 유니폼인 셈이다. 일본어학교 청색, 영어학교 홍색, 러시아어학교 녹색, 한성사범학교 자주색, 프랑스어학교 황색, 중국어학교 주황색 식으로 각각 몸에 띠를 둘렀다. 동대문과 훈련원 주변엔 구경꾼이 수만 명 몰려들었다. 입상자들에겐 책상, 수첩, 자명종, 주머니칼, 연필, 연필집, 담배(지궐련), 물부리(담배파이프), 서양먹통이 주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