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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칼럼]박근혜가 올라야 할 ‘산 넘어 산’

입력 | 2011-07-17 20:00:00


황호택 논설위원

한나라당이 요즘 분위기로 흘러간다면 차기 대통령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은 싱거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박근혜 전 대표가 방해만 없다면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되는 게 확실하다”는 홍준표 대표의 말은 중립적이어야 할 경선관리자로서 부적절한 발언이긴 하지만 박근혜 대세론이 굳히기 단계에 들어갔음을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이명박(MB) 대통령 집권 후 은인자중하던 친박(親朴)의 굴기(굴起)가 원내대표 경선과 전당대회를 치르며 두드러졌다. 친이(親李) 중에는 친박에서 불러준다면 언제라도 달려갈 마음의 준비가 돼 있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내년 4·11 총선이 다가올수록 박 전 대표의 지원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설 것이다. 그러나 4·11 총선은 박 전 대표에게 전면에 나서기도 흔쾌하지 않고, 안 나설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선거다. 총선 결과가 나쁘게 나오면 ‘박 전 대표로는 안 된다’는 논의에 불을 댕길 수 있고, 어렵게 대통령이 되더라도 여소야대의 험난한 가시밭길을 걸어야 한다.

박 전 대표와 대척점에 있는 이재오 특임장관은 여름이 끝날 무렵 당에 복귀하겠다는 결심을 굳히고 있다. 그는 백의종군하면서 사분오열된 친이를 추슬러 ‘친서민’과 ‘반(反)부패’를 내걸고 총선 이후 사활을 건 게임을 벌일 구상이라고 한다. 대선후보가 여의치 않을 경우 박 전 대표의 대안을 모색하는 중심축을 맡아 경선을 달구는 역할을 시도할 것이다.

“가장 넘기 어려운 산은 바로 자신”


한나라당은 경선이 쉬우면 본선이 어려운 징크스가 있다. 이회창 후보는 두 차례 경선에서 압도적으로 이겼지만 두 번 다 패했다. MB는 대의원 투표에서 지고 여론조사에서 이겨 간신히 후보가 됐으나 본선에서는 압승했다. 박 전 대표가 너무 쉽게 후보가 되고 야당은 치열한 경선과 단일화 이벤트로 손님을 끌면 2002년 노무현 대 이회창의 대선 구도 같은 악몽이 재연될 수도 있다.

박 전 대표가 넘어야 할 첫 번째 산이 4·11 총선이라면 PK 지역의 심상치 않은 정서와 김영삼(YS) 전 대통령도 또 다른 산이다. YS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내심 대권 후보로 점찍었던 모양이다. 반 총장은 YS 밑에서 외교안보수석을 하면서 황장엽 망명을 깔끔하게 처리해 칭찬을 들었다. 8월 초순 서울역에서 거행될 강우규 의사 동상제막식에 반 총장을 참석시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하려고 YS와 가까운 현 정부 유력 인사가 움직였다. 친박 쪽에서도 유엔 사무총장 경력에 충청도가 고향인 주자가 나선다면 만만찮은 상대가 될 수밖에 없어 걱정이 컸다. 반 총장의 연임으로 YS는 카드를 접었지만 꾸준히 박 전 대표의 대항마를 물색할 것이라는 전언이 흘러나온다.

“박근혜의 대권 가도에서 가장 높은 산은 바로 박근혜”라는 말도 있다. 박 전 대표는 6월 7일 동생인 박지만 씨와 신삼길 삼화저축은행 명예회장의 관계에 대한 야당의 의혹 제기에 “본인이 확실하게 말했으니 그걸로 끝난 것”이라고 일축했다. 박 전 대표의 단문형(短文型) 코멘트가 크게 성공한 사례는 2006년 지방선거 유세 중 테러를 당했을 때의 ‘대전은요?’일 것이다. 그러나 사안이 복잡할 때는 ‘설명이 짧은 정치’를 갑갑해 하는 국민도 많다. 박지만 씨의 부인 서향희 변호사는 삼화저축은행 고문변호사를 지냈다. 서 변호사는 대전고검장을 지낸 이건개 변호사와 함께 법무법인 주원의 공동대표로 있으면서 구설에 오르자 지난해 그만둔 후 몇몇 기업의 자문을 맡았다. 박 전 대표에게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으니까 ‘보험 들려는’ 사람들이 가족 주변을 파고들 수도 있다.

‘한강의 기적’을 이룬 박정희 대통령에게 향수를 품은 세대가 하루가 다르게 줄고 있는 것도 박 전 대표로서는 아쉬운 점일 것이다. 20, 30, 40대 중에는 한국의 경제성장이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줄 아는 사람이 많다. 박 전 대표가 세종시 원안 지지로 충청도 표심을 사로잡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수도권에서는 이탈도 있었다. 수도권의 지식인이나 중산층 가운데는 박 전 대표가 포퓰리즘 열풍에 침묵하는 것에 비판적인 사람이 적지 않다.

野 단일화하면 승패 안갯속으로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처음 등장하는 재외국민 투표도 복병이다. 240만 재외국민 유권자의 투표율은 높지 않겠지만 15대 대통령선거(김대중 대 이회창)의 39만 표 차 정도는 뒤집을 수도 있다. 북한 돌발변수, 개인 검증, 경제상황도 선거 막판에 어떻게 작용할지 가늠하기 어렵다. 친박 캠프의 한 인사는 “산 넘어 산”이라고 말했다. 야당은 어떤 수를 쓰든 단일후보를 내놓을 것이다. 박 전 대표와 야당 단일후보와의 대결은 2007년처럼 산사태 같은 승패로 끝나기보다는 51 대 49 혹은 49 대 51의 혼전이 될 가능성이 있다. 박 전 대표를 기다리는 마지막 큰 산이다.

황호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