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학교가 사라진다면, 우리 아이들은 날마다 무엇을 하면서 지낼까? 병원이 없어진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될까? 그리고 자가용도 없다면? 먼저 학교가 없다면 수많은 학생들은 당장 우왕좌왕할 것이고, 병원이 없어지면 치료를 받지 못하는 환자들이 넘쳐날 것이며, 안타깝게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늘어날지도 모르겠다는 걱정부터 앞선다.
◇ 이반 일리히-소박한 자율의 삶 / 박홍규 지음 / 텍스트 / 298쪽 / 16000원
하지만 ‘병원이 병을 만든다’, ‘학교 없는 사회’,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 등으로 이미 국내 독자들에게도 잘 알려진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이반 일리히는 병원, 학교, 자가용이 우리 인간들에게 꼭 이롭지만은 않다고 주장한다. 병원, 학교, 자가용이 우리의 삶을 황폐하게 하고 타율적으로 만든다고 지적했다. 이반 일리히를 처음으로 국내에 소개한 영남대 박홍규 교수의 신간 《이반 일리히-소박한 자율의 삶》은 그의 삶과 사상을 다룬 평전이다.
그는 “자율적으로 자유롭게 자치하는 사회를 만들며, 자연 속에서 자연스럽게 사는 것이 행복이고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지키는 것"이라고 했다.
저자는“나는 일리히를 좋아한다. 특히 그의 전인적이라고 할 정도로 폭이 넓고 깊이가 있으며, 따뜻한 관용과 날카로운 비판을 겸비한 교양인으로서 부드러움에서 우러나오는 깊은 관심과 통찰의 맛을 좋아 한다” 고 할 만큼 이반 일리히에게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 그는 스스럼없이 이반 일리히를 스승이라 칭한다. 그렇다고 그가 일리히를 남들보다 뛰어난 인물로 특별하게 본 것은 아니다.
일리히는 병원을 전적으로 부정하지도 않았다. 모든 의학의 과도화에 대해 비판적이었고, 그런 의료 제도에 의해 강제되지 않는 자기 치료를 주장하고 몸소 실천했다. 병원에 가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학교와 자동차에 대한 입장도 마찬가지다. "근본적으로 산업주의적 사고방식과 생활 방식을 포함한 산업주의 체제를 바꾸어야 한다” 고 주장했다.
저자는 ‘병원이 병을 만든다’, ‘학교 없는 사회’,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 등의 책을 번역했고, 30여 년 동안 국내에 소개한 때문인지 이반 일리히와 저자의 삶은 서로 닮아 있는 듯하다. 또한 그 때문에 《이반 일리히 - 소박한 자율의 삶》은 그 어느 책보다 이반 일리히의 삶과 사상을 친절하고 솔직하게 담아내고 있다.
소년 일리히는 빈에서 친구 프로이트와 산보하면서 정식분석학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도 했고, 어린 시절부터 반나치 저항 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유태인 박해를 피해 이탈리아 피렌체로 건너가 피렌체 대학에서 생물학을 공부하고, 바티칸 그레고리안 대학에서는 신부가 되기 위해 신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그 뒤로 잘츠부르크 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하기도 했다. 스물다섯 살이 되던 1951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중심가 아일랜드-푸에르토리코 교구의 신부가 되었고, 1956년부터 4년간 푸에르토리코의 가톨릭 대학에서 부총장을 맡았다. 또한 산아 제한에 반대하는 지사 후보자에게 투표하지 않도록 요구한 가톨릭과 대립해 부총장직을 사임하고 도보로 남미를 횡단했다.
1970년대에는 학교, 병원, 교통 등 산업주의를 비판하는 ‘병원이 병을 만든다’, ‘학교 없는 사회’,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 등의 책을 써서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 후 1980년 말에는 대장암에 걸려 병원 치료를 거부하고 아편으로 자가 치료를 하다 2002년 생을 마감했다.
◇ 이반 일리히-소박한 자율의 삶 / 박홍규 지음 / 텍스트 / 298쪽 / 16000원
강미례 동아닷컴 기자 novemb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