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폐쇄 조직 속에 양심 쉽게 무너져
《최근 해병대 총기 사건으로 군대 내 가혹행위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왜 잊을 만하면 ‘왕따’나 구타 같은 조직 내 가혹행위가 불거지는가? 인간은 양심과 이성을 가진 존재가 아닌가? (gala****)》
말레이 반도의 세마이족은 그들 언어에 ‘살인’이란 단어가 없고, ‘때리다’가 가장 공격적인 말일 정도로 비폭력적 문화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1950년대 영국 정부가 공산 게릴라와 전투를 위해 세마이족 남자들을 징집하자 그들은 광기에 휩싸여 적을 죽였고 물건을 약탈하는 것을 즐겼다. 이를 보면 공격성이란 타고난 것이고, 문화와 사회적 학습이 공격성을 억제하고 다듬는 기능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사회적 역할이 공격성을 표현하는 장을 마련해 주기도 한다. 필립 짐바르도의 ‘간수와 죄수 역할 실험’에서 간수 그룹은 죄수 그룹을 가혹하게 다뤄 계획보다 일찍 실험을 끝내야 할 정도였다.
이때 개인의 생각이나 판단은 더 힘을 갖지 못하고, 조직 자체의 윤리나 규칙이 일차적 역할을 한다. 그걸 받아들이면 혼자일 때는 하찮은 존재였던 자신이 강한 집단 안에서 그만큼의 ‘전능’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집단이 폐쇄적일수록 강하게 발생한다. 그 안에서 강한 결속력이 유지되고, 구성원들은 심리적 안정감을 갖는다. 아프리카의 10대 소년병들이 납치된 지 몇 달 만에 철저히 조직에 세뇌돼 잔학한 살인을 일삼는 것은 타고난 본성 때문만은 아니다.
그 결속력을 유지하는 데 또 하나의 힘은 증오다. 증오를 함께 표현하면 구성원의 심리적 통일감은 공고해진다. 외부에 증오의 대상이 없으면 내부로 눈을 돌린다. 조직에 누가 된다고 여겨지는 희생자를 찾아 공격한다. 조직 내에서 이는 구성원의 결속을 유지하고 조직을 공고히 하기 위한, 불가피한 일로 간주된다.
하지현 건국대 의대 교수 신경정신과
하지현 건국대 의대 교수 신경정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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