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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보’ 23명이 발 구르자 39층 건물이 흔들렸다… 테크노마트 진동 원인 규명

입력 | 2011-07-20 03:00:00

군무에 정상치 10배 흔들려… “건물 안전에는 영향 없어”




19일 서울 광진구 테크노마트에서 열린 진동 원인규명 시연회의 영상들. 12층에 있는 사람들이 1초에 2.7번 발을 구르며 뛰기 시작하자(오른쪽 모니터 화면) 38층에 설치된 진동계측기에서 진동에너지가 급격히 증가하는 것이 보인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1초에 2.7번 발을 구르는 23명의 격렬한 태보(태권도·복싱·에어로빅을 합친 운동) 동작에 39층짜리 대형 건물이 흔들렸다. 흔들림은 높은 층일수록 컸다. 38층에서는 책상에 놓인 난 잎이 크게 흔들거렸고 31층에 있던 기자는 울렁증과 어지럼증을 느낄 정도였다.

19일 강변 테크노마트에서는 5일 발생한 이상 진동의 원인을 찾기 위한 시연이 열렸다. 당시와 비슷한 상황을 연출한 결과 건물 고층부에서 나타난 흔들림 현상은 12층 피트니스센터에서 단체로 했던 태보 때문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날 대한건축학회와 테크노마트 건물주인 프라임산업은 13층 회의실에서 ‘진동 원인 규명 설명회’를 열고 “2.7Hz(1초에 2.7번 진동)의 진동수를 가진 태보 운동이 같은 진동수를 가진 강변 테크노마트 건물을 흔들었지만 안정성에 지장을 주는 정도는 아니었다”고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5일 12층 피트니스센터에서 진행된 태보 운동의 위아래 방향 진동수가 우연히 건물 전체의 고유 수직진동수와 맞아떨어져 ‘공진 현상’을 일으켰다고 설명했다. 공진 현상이 일어나면 발생하는 진동에너지가 계속 누적돼 흔들림이 커진다.

○ 31층서 4분간 ‘배 탄 기분’ 느껴

공진 현상을 일으키는 시연은 오후 3시 30분부터 시작됐다. 13층 회의실에는 대형 모니터 4대에 각각 12층 피트니스센터의 영상, 38층의 가속도(진동) 계측기와 난 화분의 영상이 생중계됐다.

▼ “12층서 ‘쿵쿵’하는 4분동안 31층선 배 탄 느낌” ▼


12층에서 시연을 위해 모인 23명이 처음에는 4분간 가벼운 태보를 했다. 하지만 1초에 2.7번 똑딱이는 메트로놈(박절기) 소리에 맞춰 발을 구르며 격렬하게 태보를 하자 38층에 설치된 진동계측기의 신호가 급속히 높아졌다. 정상 수치의 10배 수준으로 높아진 진동은 태보가 끝날 때까지 계속됐다. 계측기 뒤편의 난 잎도 크게 흔들렸다.

4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31층의 기자는 위아래로 흔들리는 진동 때문에 계속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31층에 근무하는 회사원 이모 씨(46)도 “배 탄 느낌이 지난번 진동과 거의 비슷하다”고 말했다. 5일 상황처럼 10분 이상 이런 진동이 계속됐다면 사람들이 두려움을 느껴 대피할 만했다.

○ 진동에너지 점차 쌓여 흔들림 심해져

이번 시연에 연구자로 참여한 이동근 성균관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5일 사건 당시 피트니스센터에 새로 온 태보 강사가 평소보다 강도 높은 동작을 반복하는 운동을 시켰다는 얘기를 듣고 공진 현상이 원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반복하는 움직임은 공진 현상을 일으킨다. 공진 현상이 일어나면 진동이 사라지지 않고 에너지가 점차 쌓여 건물의 흔들림이 점점 심해진다.

사건이 일어난 5일 오전 태보 강습에 참가했던 이모 씨(50)는 “태보 강사가 부임 첫날이라 그런지 강도 높은 서너 가지 동작을 반복적으로 20분 정도 했다”며 “당시 소음과 진동이 커 주변과 위아래 층에서 항의를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하층보다 상층의 흔들림이 심했던 현상도 ‘건물 전체의 공진이 원인’이라는 데 힘을 실었다. 테크노마트는 탄성이 있는 철골 구조로 지어져 건물 전체가 위아래로 흔들리면 암반에 고정된 하층보다 지지할 곳이 없는 상층의 흔들림이 크다. 이 교수는 “이번 공진은 12층에서 발생한 진동이 상층으로 전달되며 커졌다기보다 건물 전체가 공진으로 흔들리는 와중에 하층이 덜 흔들린 셈”이라고 설명했다.

대한건축학회와 프라임산업은 이번 잠정 결론을 바탕으로 정밀진동해석과 정밀안전진단 등 추가 조사를 진행해 2, 3개월 뒤 최종 결론을 발표할 예정이다. 연구진은 “피트니스센터와 가까운 10∼15층과 멀리 떨어진 30층 이상에 있는 사람이 느끼는 진동의 강도(민감도)는 다를 수 있다”며 “이들을 대상으로 한 상세한 설문조사 결과도 덧붙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동혁 동아사이언스 기자 jermes@donga.com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 공진(共振·resonance) ::

외부에서 들어온 진동수가 물체의 진동수와 일치해 진동이 커지는 효과를 말한다. 모든 물체는 고유진동수를 갖고 있으며 이 고유진동수에 해당하는 전파나 파동을 흡수하는 성질을 갖고 있다. 그네를 탈 때 그네가 움직이는 방향으로 발돋움을 하면 더 높이 올라가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네와 발돋움의 진동수가 일치하면서 두 힘이 합해져 강해지는 것이다.
▼ “건물설계 때 수직진동도 고려할 필요” ▼

‘운동으로 진동’ 주장했던 정란 교수

 

“만약 이런 식으로 고층 사무용 건물에 피트니스센터가 들어서 있고, 리듬에 맞춰 운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면 앞으로 사무용 건물 설계기준도 다시 한 번 검토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한건축협회를 통해 건물 안전진단에 참여한 총책임자인 정란 단국대 건축공학과 교수(사진)는 “이번 진동은 건물의 고유한 수직방향 진동수와 12층 피트니스센터에서 실시됐던 태보의 수직방향 진동수가 일치해 공진현상이 일어나며 생겼다”며 “테크노마트 같은 사무용 건물은 보통 공연장과 달리 수직방향으로 뛸 일이 적다고 보기 때문에 수평방향 진동수만 건물 설계에 참고한다”고 말했다. 그는 당초 피트니스센터의 집단 ‘뜀뛰기’로 진동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또 정 교수는 “이런 진동은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작고, 일어나더라도 건물의 안전성에는 별다른 영향이 없다. 다만 사용자들이 진동을 느껴 불편을 겪을 여지는 있다”며 “삼풍백화점 붕괴를 기억하는 시민들이 불안을 느껴 일이 커진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안전성 외에도 사용자 편의까지 생각하는 최근 건축 추세에 맞춰 수직방향 진동수도 참고하도록 현재의 고층 사무용 건물 설계기준을 재검토해볼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원인규명 감정단의 간사를 맡아 사고 원인 규명 작업에 참여했다. 정 교수는 “콘크리트로 건설된 삼풍백화점과 철골로 지은 테크노마트는 경우가 완전히 다르다. 철은 유연성이 큰 소재이기 때문에 진동이 있더라도 본래 상태로 돌아와 건물에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