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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스타일 버렸다… 베트남 시장 파고드는 한국 유통의 ‘카멜레온 기술’

입력 | 2011-07-22 03:00:00

테마파크처럼 볼링장-영화관 입점…백화점처럼 대형마트 매장 고급화




베트남 호찌민 시 롯데마트 남사이공점은 여가 시설이 부족한 베트남 사정을 고려해 볼링장, 극장 등을 들여놓으며 호찌민 시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위쪽 사진).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유통업체들은 철저한 현지화와 유기적인 협력체제로 베트남 시장을 공략해 동남아시아 진출의 교두보로 삼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롯데마트 남사이공점에 들어선 락앤락 매장. 호찌민=박승헌 기자 hparks@donga.com

14일 오후 1시. 베트남 호찌민 시 7군(郡) 롯데마트 남(南)사이공점에는 낮 시간임에도 젊은이들로 북적였다. 볼링장과 영화관이 들어서 있는 이곳 3층 매장은 마땅한 데이트 장소가 없는 호찌민에서 젊은 연인들의 연애 장소로 인기를 끌고 있다. 볼링장 옆에는 1990년대 후반 국내에서 유행했던 ‘펌프’ 등 게임기도 여러 대 설치돼 있어 이를 즐기는 사람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여기에 각종 한류(韓流) 상품과 음료 등을 파는 키오스크가 통로에 있어 마치 테마파크의 축소판 같은 모습이었다. 여가를 즐길 공간이 부족한 베트남인의 발길이 이곳을 향하는 것은 물론이다.

최근 롯데마트를 비롯해 락앤락, CJ오쇼핑 등 국내 유통업체들은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시아에 앞다퉈 진출하고 있다. 베트남은 지난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200달러(약 125만 원) 정도에 불과하지만 인구가 8700만 명에 달하고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6.7%에 이르는 등 잠재력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국내 유통업체들은 현지화 전략을 통해 베트남 시장을 공략하며 동남아 시장 개척을 위한 교두보를 쌓고, 공동기획 상품을 내는 등 서로 시너지를 내면서 한국 유통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 비결은 현지화


2008년 베트남에 첫발을 디딘 롯데마트가 남사이공점에 이어 지난해 호찌민 시 11군에 베트남 2호점까지 내면서 안착할 수 있었던 비결은 현지화 전략이다. 롯데마트 남사이공점 신선식품 매장에는 쇠고기, 돼지고기 등이 한국과 달리 포장 없이 덩어리째로 진열돼 있다. 직접 만져보고 고기를 사는 베트남인의 습관을 고려해 집게로 만져보고 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생선은 살아있는 것을 선호하는 특성을 반영해 아예 수족관을 만들었다.

가장 안쪽에 놓인 신선식품 매장 위치도 마찬가지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냉장고 보급률이 낮고, 용량도 작아 베트남 주부들은 매일 장을 보기 때문에 매장 안쪽에 신선식품 매장을 둬 소비자들이 최대한 오래 매장에 머무르며 다른 물건도 살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LG생활건강이 흰 피부를 선호하는 베트남 여성을 공략하기 위해 미백화장품을 주력으로 내세우고, 정관장이 더운 날씨에 적합한 캡슐형 홍삼제품으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산 것도 현지화의 산물이다.

○ 현지 수요 맞춘 금고, 발전기, 발가락 스타킹

인기 상품도 다르다. 롯데마트 남사이공점에는 한국엔 없는 금고와 발전기 등도 진열돼 있다. 신용거래가 덜 발달돼 은행 예금보다는 집에 있는 금고에 돈이나 귀금속을 보관하기 때문이다. 전력 사정이 나빠 부유층 소비자를 타깃으로 발전기도 들여놨다. 5m 남짓한 금고, 발전기 매대의 한 달 매출은 1억5000만 동(약 770만 원). 베트남인의 한 달 평균 수입이 10만 원 남짓인 것을 고려하면 인기가 높다. 여기에 플립플랩을 즐겨 신는 베트남 여성을 위한 발가락 스타킹과 오토바이를 타다 스콜(소나기)을 만날 때 유용한 20여 가지 우비 등도 국내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상품이다.

대형마트뿐만 아니다. 락앤락의 베트남 히트상품은 아웃도어 물병. 더운 날씨에 가볍게 들고 다닐 수 있는 ‘아쿠아’ 물병으로 현지에서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락앤락은 냉장고 용량이 작고 우리보다 밥을 많이 먹는 베트남인의 사정을 감안해 부피가 작은 밀폐용기와 용량이 큰 밥통도 베트남 시장 공략용으로 만들어 팔고 있다.

○ 베트남 공략하는 한국 유통의 힘


현지화로 베트남 시장에 안착한 이들 유통업체는 서로 협력하며 시너지도 내고 있다. 대형마트와 중견업체, 중소업체들이 서로 협력하며 판로를 뚫어주고 그동안 쌓아온 프리미엄 이미지를 더욱 높여 베트남에서 한국 유통의 위상을 높이고 있는 것.

호찌민 최고급 백화점인 다이아몬드백화점을 비롯해 주요 백화점에 입점하며 고급 이미지를 키워온 락앤락은 최근 롯데마트와 손잡고 ‘윈윈 효과’를 내고 있다. 락앤락은 판로를 확장하고 롯데마트는 현지에서 고급 브랜드로 이름난 업체를 입점시키며 백화점 수준의 고급 이미지를 키우는 데 활용하는 것. 이들은 롯데마트의 저가 경쟁력과 락앤락의 프리미엄 이미지를 살려 공동기획 상품 ‘롯데마트·락앤락 밀폐용기 세트’를 20일 선보이는 등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여기에 락앤락은 베트남 매장에서 진성세라믹, 남선 등 50여 개 국내 중소 주방생활용품 업체의 제품을 팔며 중소업체와도 협력하고 있다. 락앤락은 제품 라인업을 넓히고, 중소업체들은 판로를 확보해 해외 진출의 교두보를 얻고 있는 셈이다. 락앤락 베트남 현지법인 관계자는 “한 중소 벽지제작 업체의 경우 락앤락 매장 판매를 발판 삼아 베트남에 직접 진출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3일에는 CJ오쇼핑이 베트남에서 SCJ TV를 개국하며 첫 전파를 쏘아 올려 한국 유통업체들의 유기적인 관계는 더욱 깊어지고 있다. 락앤락 제품으로 첫 방송을 시작한 CJ오쇼핑의 가세로 국내 유통업체의 판로가 한층 넓어진 것. 락앤락 관계자는 “3개월 정도로 예상했던 홈쇼핑 판매 물량이 15일 만에 동났다”며 “앞으로 추가 발주를 해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호찌민=박승헌 기자 hpark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