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바돌로뮤 왕립아시아학회 이사
한옥을 포함한 모든 오래된 건물은 한국에서 노후 불량 건축물로 간주된다. 대부분의 한국인은 쓸모없는 한옥을 부수고 새로운 콘크리트 건물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도시개발계획 가이드라인과 세금 규정도 이런 생각과 별반 다르지 않다. 지은 지 20년 된 건물은 영락없이 부숴야 할 노후시설로 취급된다. 한국 사람들에게 내가 43년 동안 한옥에서 살아왔다고 말하면 자동적으로 이런 반응이 나온다. “당신은 그런 불편하고 나쁜 옛집에서 어떻게 살 수 있나요? 그 집을 부수고 새집을 지어야죠.”
이런 시각 때문에 1960년 이후 서울에서만 70만 채의 한옥이 없어졌다니 안타깝다. 전국적으로는 훨씬 더 많은 한옥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재개발 계획에 따라 한옥이 콘크리트 소재의 빌라 또는 원룸으로 바뀌면서 서울에 한옥은 4000채도 남지 않았다. 이대로 가다가는 서울의 한옥마을인 북촌마을에도 몇백 채의 한옥만 남을 것이다. 북촌마을의 한옥과 비슷하거나 혹은 더 뛰어난 문화적 가치를 지닌 한옥이 정부 지정 북촌마을 이외 장소에도 수천 채 있지만 이런 한옥에 관심을 쏟는 사람은 애석하게도 거의 없다.
나는 한옥의 문화적 가치와 금전적 가치에 대해 설명하고 싶다. 한옥에서의 삶은 어떤 특별한 가치가 있는가. 우선 한옥은 인간적인 집이다. 나무, 흙, 돌, 종이 등 완벽하게 자연 소재로 지은 한옥은 콘크리트, 알루미늄, 유리, 비닐 등으로 지은 빌딩과는 비교할 수 없는 건강한 환경을 제공한다.
한옥은 미학적 가치도 훌륭하다. 한옥은 한국 건축미를 압축해 보여준다. 지붕에서 시작한 곡선은 아름답게 균형을 이룬다. 치수의 비례도 완벽해 모든 지붕 선 규격은 다른 규격과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수평적인 나무 기둥과 하중을 지지하는 수직적 보는 완벽하게 균형적인 비율로 한옥의 각 칸을 에워싼다. 각 칸의 폭도 적당하다. 또 각 건축 요소는 매우 섬세하게 연결돼 미학적 하모니를 자아낸다. 아름다운 한옥의 문은 한 편의 공예미술이다. 미닫이문의 격자 모양은 철학적 의미를 지닌 한자에서 발전됐다.
한옥은 과학이다. 예로부터 비 피해를 피할 수 있는 입지를 골라 자리 잡았다. ‘ㄱ’ ‘ㄷ’ ‘ㅁ’ 등의 건물 형태는 강풍을 막아내고, 지붕 밑을 지탱하는 서까래는 비가 벽에 스며들지 않게 해 준다. 아궁이에 3, 4시간 불을 때면 온종일 온기가 보존되는 온돌 설계는 건물을 뽀송뽀송하고 청결하게 해 준다.
피터 바돌로뮤 왕립아시아학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