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워두면 없어지고 잠가두면 뜯어가고…
자전거를 ‘애마’로 둔 자전거족(族)과 그 애마를 노리는 자전거 도둑 사이에 벌어지는 치열한 머리싸움 얘기다.
예전에는 간단한 잠금장치만 달아두면 걱정할 게 없었다. 그러나 학생들도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절단기나 쇠톱 앞에서 무용지물이 된 지 오래. 이에 강력한 내구력을 가진 ‘U자형’ 또는 ‘4관절’ 자물쇠 판매량이 늘었다. 그러자 안장이나 핸들, 바퀴만 뜯어가는 얌체족들이 생겨났다. 자전거에 잠금장치를 하나 더 채워 주인이 가져갈 수 없도록 만든 후 밤에 훔쳐가는 ‘덮어쓰기’란 신종수법도 등장했다. 자전거 소유자들은 이에 맞서 동호회를 중심으로 한 공동 감시체제를 운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도 부품만 전문적으로 파는 ‘꾼’들에게는 별 소용이 없다.
자전거등록제 등의 정부대책이 미뤄지는 사이 ‘지키려는 자’와 ‘훔치려는 자’의 숨바꼭질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 전쟁은 과연 끝날 수 있을까.
○ 자전거족의 비애
자전거족들은 항상 적들의 시선에 노출된다. ‘1, 2분이면 되는데’란 안이한 생각을 하는 순간, 적들은 허점을 파고든다. 애지중지해온 보물이 눈앞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잠깐 경계심을 풀었던 자신을 자책하게 된다. 적들을 미리 알아차리는 건 불가능하다. 중고등학생은 물론 초등학생까지도 순식간에 사악한 ‘자전거 도둑’으로 돌변한다.
2010년 이륜차(오토바이, 자전거 등) 절도 사건은 1만9801건으로 전년(1만6805건)보다 17.8% 늘었다. 특히 최근에는 수백만∼수천만 원에 달하는 고가 자전거가 많아 피해 정도가 더 심각하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이 2009년 조사한 결과 자전거 이용자 53%가 ‘자전거를 도난당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특히 두 번 이상 잃어버린 경우가 절반을 넘었다. 도난 장소는 ‘집 또는 집 주변’이 63%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자영업자인 윤모 씨(33·서울 광진구 군자동)는 1년 전 60만 원에 구입한 ‘스콧서브40’을 21일 새벽에 잃어버렸다. 윤 씨는 “4관절 자물쇠로 묶어두었는데 그냥 통째로 가져간 듯하다”며 “늘 실내에 보관하다 2층 집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둔 지 이틀 만에 없어졌다”고 말했다. 회사원 이모 씨(41·경기 파주시 운정동)는 2년 전 20여만 원짜리 3단 접이식 자전거를 샀다가 누군가 안장만 떼어가는 바람에 혀를 차야 했다. 그가 새로 구입한 자전거는 며칠 만에 아예 통째 사라졌다.
회원이 41만여 명인 자전거 동호회 카페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자출사)’에는 도난신고 글이 매달 40∼50건씩 올라온다. 이들 대부분이 자전거를 아파트 거치대나 주택 마당에 두었다가 잃어버린 경우였다.
○ 자전거 도둑 대부분이 10대
지난달 말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올라온 글이다. 온라인에는 이런 글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절도가 심각한 범죄인지조차 모른 채 일을 저지른 미성년자가 많다는 얘기다.
자출사 카페운영자인 오종렬 씨(34)는 “전문적으로 자전거를 훔치거나 유통하는 사람도 꽤 있지만 온라인 장터를 통해 장물을 처분하려는 이는 대부분 미성년자”라며 “회원들의 제보로 찾은 범인이 학생이어서 처벌조차 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었다”고 말했다.
실제 2009년 2분기(4∼6월) 서울에서 발생한 자전거 절도사건의 피의자 458명 중 19세 이하가 361명(78.8%)이었다. 최근 휴가비를 마련하기 위해 자전거 20여 대를 훔쳤다 경찰에 잡힌 일당도 20대 학원강사 1명을 제외한 3명이 10대였다.
자전거 도난사건을 다수 처리한 바 있는 서울지방경찰청 김광진 경사는 “최근에는 학생들도 순간적 충동 때문에 자전거를 훔치기보다는 아예 용돈으로 쓸 목적으로 계획하는 경우가 많다”며 “14세 미만의 경우 형사상으로 처벌을 받진 않지만 소년보호사건으로 처리될 경우 평생 기록에 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14세 이상 청소년은 초범일 때는 대개 훈방되지만, 재범이 되면 형사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커진다.
○ 어떻게 내 자전거 지킬 수 있나
자전거족에게 가장 쉬운 방법은 강력한 잠금장치를 다는 것이다.
실제 온라인 쇼핑사이트 G마켓과 옥션에서는 올해 상반기 자전거 도난방지 용품 매출이 각각 전년 대비 7%, 33% 늘어났다. G마켓 스포츠팀 최우석 팀장은 “여름 휴가철에는 자전거 도난 방지 용품과 같은 액세서리 수요가 더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며 “최근에는 U자형 잠금장치나 무선자전거도난경보기 등 5만∼6만 원대 고가 제품 판매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사후조치 중 가장 시급해 보이는 것은 자전거등록제. 자동차처럼 각 자전거에 번호를 부여하면 장물을 쉽게 매매할 수 없어 결과적으로는 절도사건이 줄어들 수 있다. 그런데 정부가 보이고 있는 행태는 ‘자전거 활성화 정책’과 거리가 멀다.
행안부는 지난해 자전거등록제 시행을 위한 사전 용역을 시행했지만 올해 예산 5억여 원을 확보하지 못해 시행을 늦추고 있다. 전병길 행안부 지역발전과 주무관은 “자전거 활성화 정책의 일환으로 올해 등록제 시행을 위한 전산시스템을 개발하려 했지만 예산을 확보하지 못했다”며 “내년에 예산이 배정되면 곧바로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국에서 서울 양천구, 경기 과천시와 파주시, 경남 김해시와 사천시, 제주 제주시 등 6개 기초자치단체만 자체적으로 자전거등록제를 시행해 1만2000건 정도를 등록했다. 그러나 자전거 리스트 확보 수준일 뿐 도난 방지에는 전혀 효과가 없다.
자전거 도난 탓에 몸살을 앓았던 유럽 여러 나라는 이미 자전거등록제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매년 70만 대 이상 도난당하던 세계 최악의 자전거 도난국 네덜란드는 2008년 1월부터 ‘국가 자전거 등록부’를 시행 중이다. 또 무선정보인식장치(RFID) 장착을 의무화해 도난 물품의 거래를 원천적으로 봉쇄했다. 덴마크는 모든 제조사와 판매점에서 자전거 코딩을 하고 경찰이 해당 데이터베이스를 조회할 수 있도록 해 도난 자전거 회수율을 40%까지 높였다. 영국과 프랑스도 민간단체나 회사를 중심으로 자전거 도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적극 찾고 있다.
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