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리 훈풍’ 北-美회담으로
한국 정부는 23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을 계기로 열린 한미,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을 계기로 미국과 일본에 북-미, 북-일 대화를 시작해도 좋다는 뜻을 전달했다. 22일 남북 비핵화 회담의 성사로 ‘남북 대화→북-미 대화→6자회담’의 비핵화 3단계 수순의 1단계가 일단 충족됐다고 자평하며 2단계 진입을 공식화한 것이다.
○ “美와 대화위해 남북대화 임했을 것”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정부가 남북 비핵화 회담의 내용보다 성사 자체를 부각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이번 회담이 ‘생산적이고 유익했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지만 비핵화 이슈에 대한 남북의 견해는 평행선을 달렸다.
미국은 북한 측에 김 부상의 방문을 성사시키려면 한국과 대화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미국이 남북 비핵화 회담 전부터 김 부상의 방미 문제를 협의해 왔다는 사실도 이런 관측을 뒷받침한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24일 박의춘 북한 외무상이 ARF 연설에서 “조선반도 핵문제는 우리 공화국에 대한 미국의 적대시 정책과 핵전쟁 위협으로부터 나온 문제로 그 근원을 제거할 수 있는 책임과 능력을 가진 기본 당사자는 미국”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 북, “계속 잘해보자”에 대답 없어
급물살을 타는 북-미 대화에 비해 후속 남북 비핵화 회담이 언제 다시 열릴지는 결정되지 않았다. 남북은 후속 회담의 일정과 형식을 협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23일 ARF 회의장에서 박 외무상을 만나 “남북관계 회복을 위해 비핵화 회담을 남북이 주도하자고 얘기했고 박 외무상도 공감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박 외무상은 김 장관이 “남북이 계속 잘해보자”고 얘기한 데 대해 뚜렷한 답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정부는 “남북 대화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을 방안이 있다”고 강조했다. 한 당국자는 “북한이 남한으로부터 얻을 게 많이 있기 때문에 북-미 대화가 시작된다고 해서 남한을 내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남북회담 이어갈 동력은 대북지원?
이에 따라 지난해 천안함 폭침사건에 따른 5·24조치 이후 중단된 정부 차원의 대북 식량지원이나 인도적 지원이 향후 남북 대화에 북한을 끌어내기 위한 지렛대로 사용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남측은 발리에서의 남북 비핵화 회담과 외교장관 회동에서 청와대의 이런 메시지를 전달했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대화 의지에 대한 남측의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해 남북 비핵화 회담에 청와대 관계자(이도훈 대외전략비서관실 선임행정관)가 참석한 것”이라고 말했다.
나경원, 원희룡 최고위원을 비롯한 한나라당 의원 12명은 24일 “남북 당국자들이 6자회담 재개를 위한 노력에 합의한 데 대해 전적으로 환영한다. 하지만 북한이 일언반구 유감 표명이나 재발 방지에 대한 확약 없이 6자회담을 언급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 대북 태도 달라진 중국
23일 폐막한 ARF의 의장성명에는 “참가국 장관들이 한반도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가 이 지역의 항구적인 평화와 안정뿐 아니라 국제 비확산 유지에도 필수임을 재확인하고 북한의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는 문구가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미국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비핵화 원칙(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폐기)을 거의 그대로 원용한 문구가 북한이 참가한 회의의 의장성명에 포함된 것이다. 북한은 이 원칙에 강력히 반발해 왔다. 정부 관계자는 “이 문구의 주체는 ‘참가국 장관들’로 돼 있어 중국도 국제사회의 비핵화 원칙과 북한 UEP 우려에 동참한 것”이라고 말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