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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홍성철]대교협, 나무 말고 숲을 봐라

입력 | 2011-07-25 03:00:00


홍성철 동아이지에듀 대표

올해 대학입시 일정이 예년보다 한 달가량 당겨졌다. 주요 대학들이 입학사정관제 모집인원을 늘리면서 더욱 세밀한 평가를 위해 원서 접수를 일찍 시작하기 때문이다.

국내 대학입시에 입학사정관제가 도입된 지 4년이 지났지만 아직 뿌리를 내리지는 못한 것 같다. 하긴 입학사정관제 역사가 90년이나 된 미국에서도 관련 소송이 제기되곤 한다니 완벽한 제도란 없는 듯하다.

사실 미국의 입학사정관제는 특정 자질을 가진 학생을 뽑기 위해서라기보다는 특정 학생을 배제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다. 20세기 초반에 유럽으로부터 이민자가 몰리면서 미국 명문대에 유대인 학생이 대거 입학했다. 하버드대의 경우 1900년 7%이던 유대인 입학생 비율이 1922년에는 21.5%까지 치솟았을 정도. 이들의 수를 제한하기 위해 1922년 다트머스대에서 입학사정관제를 처음 실시해 다른 아이비리그 대학들로 확대됐다는 것이다.(신동아 2009년 8월 1일자, 통권 599호)

입학사정관제는 수험생에 대한 판단을 전적으로 대학에 맡긴다는 전제가 바탕이 돼야 한다. 대학의 자율성과 선발 공정성을 국민이 신뢰해야 이 제도가 성공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미국에서 입학사정관제가 정착한 것은 그 사회가 대학의 지성과 양심을 믿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은? 잊을 만하면 터지는 각종 대학 비리를 감안하면 대답은 ‘글쎄올시다’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가 올해 수시모집부터 ‘입학사정관제 공정성 확보 시스템’을 도입할 예정이다. 서울대 등 60개 대학에서 수험생이 제출한 자기소개서, 교사추천서, 학업계획서, 각종 활동보고서 등을 온라인으로 검색 비교해 표절 여부를 가려낸다는 것이다.

학원 등에서 제공하는 모범답안을 베끼거나 일부 변형하는 것을 막아 신뢰도와 공정성을 높이자는 취지다. 입학사정관제 서류전형의 사교육 의존도가 높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대책으로 보인다. 참으로 순진한 발상이다.

사교육 모범답안을 가려낸다고 공정성과 신뢰도가 높아지진 않는다. 입학사정관전형에 제출할 각종 서류를 모든 수험생이 스스로 작성하진 않을 것이다. 고액을 받고 특정 학생에게만 대신 써준 맞춤형 대필 자기소개서는 어떻게 적발해 낼 것인가. 부모나 형제가 대신 써주는 것은 또 무슨 방법으로 막으려나. 학교에서도 추천서를 직접 써 주는 교사가 드문 게 현실이다. “추천서 잘못 써서 떨어졌다”는 원망을 들을 수 있어서다. 대부분 수험생이 가져오면 교사가 읽고 확인해 주는 수준이다. 대교협이 숲은 못 보고 나무만 바라본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신뢰성과 공정성을 높이려면 대학의 입학사정관전형에 대한 모든 정보가 공개돼야 한다. 입학사정관전형에 합격한 학생들은 어떤 특성과 배경을 갖고 있는지, 각 대학은 어떤 기준으로 학생을 모집하는지 상세한 정보를 밝히자는 것이다.

그나마 올해 들어 서울대, KAIST 등 극히 일부 대학이 입학사정관제 평가 기준을 발표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제1순위는 학업능력이다. 그동안 입학사정관제는 학업능력이 부족해도 잠재력만 보여주면 합격이 가능한 전형으로 오해를 받아왔다. 이런 오해가 계속되는 한 입학사정관제를 둘러싼 공정성 시비는 계속될 것이다. 문제의 해결을 각 대학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정부나 대교협이 나서야 한다.

홍성철 동아이지에듀 대표 sungchu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