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감독. 동아일보 DB
이런 그에게 있어 장훈 감독은 참으로 '신통방통한' 제자가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장훈은 김기덕의 제자 중 처음으로 스승의 오랜 콤플렉스이자 한계였던 '비흥행성'을 딛고 일어선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서울대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장훈은 영화에 대한 기초지식도 없는 상태에서 무작정 김기덕을 찾아가 "제자로 받아달라"고 호소한 끝에 김기덕의 연출부와 조감독을 거쳐 김기덕이 각본을 쓴 '영화는 영화다'로 연출 데뷔하게 되었는데, 이 영화가 무려 130만 관객을 끌어들이면서 김기덕이 연출한 영화 중 최고 흥행을 기록했던 '나쁜 남자'(74만 명)의 성적을 두 배 가까이 넘어선 것이다.
자, 스승인 김기덕의 각본으로 제자인 장훈이 연출했다. 흥행에 대성공했다. 그러면 이 흥행은 스승 덕분일까, 제자 덕분일까. 분명한 사실은, '영화는 영화다'야말로 그간 김기덕이 (각본이든 연출이든 제작이든) 손을 댄 모든 영화 중 가장 매끈하고 이야기가 구체성 있는 작품이었다는 점이다. 처절하고 참혹한 시추에이션을 스타일과 속도감으로 풀어내는 연출은 김기덕의 예술이면서 동시에 김기덕의 예술이 아닌 새로운 것이었다.
두 사람의 만남은 운명적이었던 것 같다. 두 예술가는 머릿속에서 추상화된 채 맴도는 단 한 줄짜리 짧은 개념을 구체적인 이야기로 엮고 형상화 하는데 각별한 능력을 지녔다는 점에서는 무척 닮아있었지만, 예술을 통해 애타게 구원을 얻고자 한 스승 김기덕과 달리 제자인 장훈은 디테일한 묘사로 대중과 소통하는 데 큰 장기를 보였기 때문이다.
그 뒤 구체적인 이야기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두 인물은 남북문제를 다룬 영화 한 편을 함께 만들기로 하고 메이저 투자배급사와 협의하던 중 헤어지게 되었다. 장훈은 스승인 김기덕과 결별하고 나와 '의형제'를 연출해 관객 540여 만 명을 모으면서 '스타감독'의 자리에 올랐고, 최근엔 100억 원이 넘는 제작비를 들인 블록버스터 전쟁영화 '고지전'을 연출했다.
'뭣도 모르는' 장훈을 제자로 받아준 뒤 '원천기술'을 전수해주고 감독으로 데뷔시킨 김기덕으로선 장훈의 변신에 울화통이 터질 일이고 배신감도 느낄 것이다. 김기덕이 최근 칸 국제영화제에 출품한 '아리랑'이란 다큐멘터리 성격의 작품을 통해 장훈을 "자본주의의 유혹에 빠진 기회주의자"라고 직설적으로 비난한 이유도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김기덕이 이처럼 노골적으로 울화통을 터트리는 것은, 단지 '기껏 키워 놨더니 등 돌린다'는 식의 단순무식한 이유에서라고 나는 생각하고 싶지도, 믿고 싶지도 않다. 김기덕도 장훈을 키울 만해서 키웠을 것이고, 장훈 역시 클 만해서 컸을 것이기 때문이다.
비즈니스의 세계에서는 배신이 있다. 하지만 예술에서는 배신이 없다. 다만 다름이 있을 뿐이다. 예술은 이익을 얻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스스로를 발견하고 구원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김기덕과 장훈의 결별은 하필이면 예술과 비즈니스가 만난 '상업영화'에서 일어난 일이니, '돈'의 문제로 보느냐 아니면 '영혼'의 문제로 보느냐에 따라 해석은 다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김기덕이 보여주는 모습은 안타깝다. 장훈이 지난 달 '고지전' 제작보고회에서 "제자의 입장에서 죄송할 뿐"이라고 심경을 토로했지만, 한 달 만인 14일 김기덕은 공식성명을 통해 "곧 개봉하는 전쟁영화가 개봉 일을 앞당기는 것도 모자라 개봉 2, 3일 전부터 변칙 상영한다. 몇 개 남은 극장을 간신히 입소문으로 버티고 있는 '풍산개'를 비롯한 작은 규모의 영화들이 불쌍하지도 않나"하면서 자신이 제작한 신작 '풍산개'를 희생자로 비유하며 장훈의 대작 '고지전'을 간접적으로 겨냥했다.
6·25전쟁 중 이름 없이 스러져간 병사들의 이야기를 담은 ‘고지전’. 쇼박스 제공
예술가들이 예술을 하는 이유는, 자신이 무언가에 완전하게 다다를 수 없다는 절망감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끊임없이 뭔가를 구하려 하고, 숙명처럼 좌절한다. 김기덕이 이젠 장훈을 자신의 분노로부터 훨훨 날려 보냈으면 좋겠다. 젊은 시절의 김기덕이 세상 에 미친 듯이 화를 내다 종국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란 작품으로 스스로를 구원했듯이 말이다. 거장은, 아낌없이 줄 뿐이다. 그리고 상처받을 뿐이다.
이승재기자 sjda@donga.com